화장기 없는 소박함 있는 미황사의 아름다움

운치 있고 색다름 있는 해남 미황사

등록 2011.07.23 15:26수정 2011.07.2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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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을 실은 관광버스는 한반도 최남서지역을 향해 달린다. 목표 지점은 전라남도 해남 땅끝. 땅끝까지 가는데 얼마를 가야하나? 가는 데까지 가다 더 갈 곳이 없으면 멈추어야하는 게 땅끝이란다.

유별나게 길었던 장마가 끝나자 찜통더위가 뒤를 잇는다. 푹푹 찌는 더위가 장마보다 더한 심술을 부린다. 산 너머 산이라더니, 심통 사나운 여름 날씨의 끝이 언제일까. 차창 밖의 뜨거운 열기가 차안의 에어컨 바람도 삼켜버린다. 지친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여행을 안내하는 일행의 리더가 마이크를 잡는다.


 미황사 일주문이다.
미황사 일주문이다. 전갑남

"땅끝마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미황사에 들려갑시다. 해남하면 대흥사를 먼저 생각하지만 아름다운 절 미황사가 있어요. 미황사 대웅전의 소박함과 응진당의 화려함이 멋지지요."

뭔가 색다름이 있는 미황사

해남 달마산 미황사. 해발 489m 달마산은 소백산맥이 한반도 서남쪽의 해남 두륜산을 거쳐 최남단 땅끝을 향해 뻗어 남해에 이르기 전에 솟아올랐다. 긴 암릉 형태로 기기묘묘한 모습을 지닌 달마산은 점점이 내려앉은 다도해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미황사에 올려다 본 달마산.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었다.
미황사에 올려다 본 달마산.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었다.전갑남

달마산은 불상과 바위, 석양빛이 조화를 이뤄 삼황(三黃)이라고 한다. 바위병풍을 뒤로 두르고 서해를 내려다보는 곳에 미황사가 자리 잡고 있다. 미황사는 경덕왕 8년(749년) 창건 이후, 문화적 유적을 가지고 있고 달마산 경관과 어울리는 절경의 산사이다. 일주문으로 향하는 일행이 내게 묻는다.

"미황사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글쎄요? 일주문에서 그 답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미황사 일주문은 여느 사찰의 일주문과 다르다. 일주문에 '달마산 미황사'라는 현판을 기대했는데 현판이 없다. 최근에 새로 중건한 듯 단청이 멋스럽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미황사는 달마산의 3황(黃)의 아름다움을 따와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서 '미황사(美黃寺)'라 붙여진 듯싶다.

미황사는 여느 사찰과 다르다. 많은 사찰에서 불 수 있는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이 있고, 사천왕문이 있는 기본 틀이 없다. 일주문을 조금 지나자 기념품과 차를 파는 건물이 보인다. 장사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건물이 제법 그럴듯하다.


화장기 없는 소박함 뒤에는 설화가 있다

 미황사 자하루. 들어갈 때는 자하루 현판이고, 빠져나와 건물을 다시보면 만세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미황사 자하루. 들어갈 때는 자하루 현판이고, 빠져나와 건물을 다시보면 만세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전갑남

조금 계단을 타고 오르니 들어갈 땐 자하루, 나올 땐 만세루가 버티고 있다. 상층은 전체적으로 트인 한 공간이다. 이곳은 한문학당이나 수련회 등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미황사 약수. 시원한 물맛이 그만이다.
미황사 약수. 시원한 물맛이 그만이다.전갑남

폭염에 가파른 계단 몇 개를 오르니 목이 탄다. 약수터가 보인다.

"약수가 정말 시원하네! 냉장고 얼린 물만큼 차가워!"

약수 한 바가지를 벌컥벌컥 들이켜니 더위가 달아나는 것 같다. 물의 고마움을 새삼 느껴진다.

미황사 대웅보전(보물 947호)이 바라다 보인다. 넓은 마당이 있는 대웅보전이 좀 특별하다. 마당에 있을 법한 탑이 없고, 대웅전의 화려한 단청은 온데간데없다. 원래 미황사 대웅보전은 1754년 중수 때는 단청 보전이 되었는데,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맨 살을 드러낸 것이란다. 부드러운 목재의 순박한 모습이 정겹다. 거기다 정면 3칸, 측면 3칸인 팔작지붕을 올린 다포집형태의 웅장함도 돋보인다.

 미황사의 대웅보전. 소박하면서도 위풍당당한 모습이 참 아름답다.
미황사의 대웅보전. 소박하면서도 위풍당당한 모습이 참 아름답다. 전갑남

 미황사 대웅보전의 안
미황사 대웅보전의 안전갑남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 좌우로 모신 고유의 불상 말고도 오직 미황사 대웅보전에서만 볼 수 있는 보물이 숨어있다. 천장을 가득 장식한 천불벽화와 범어 단청이 색다르다. 범어 단청 곳곳에 그려진 부처님께 세 번 절을 올리면 소원 한 가지는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부처님이 일천 분이시니 삼천배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기야 한 가지 소원이라도 이뤄진다면 삼천배가 대수이겠는가!

대웅전 처마와 문살 하나까지 나무 빛 맨살이 운치를 자아낸다. 배흘림기둥이 허옇게 바래고 속까지 튼 나뭇결에서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설화가 있는 미황사 대웅보전의 주춧돌
설화가 있는 미황사 대웅보전의 주춧돌전갑남

 대웅보전의 기둥
대웅보전의 기둥전갑남

기둥을 받친 거친 주춧돌 또한 부담 없는 편안함을 보인다. 주춧돌을 자세히 보니 예사롭지가 않다. 게를 비롯하여 거북이와 같은 바다 속 친구들이 뭍에 올라 대웅전 기둥 밑에 암각 되어 있다. 미황사가 간직한 바다 사찰의 설화 흔적이 아닌가 싶다.

대웅보전 위로 올려다 보이는 달마산이 그야말로 병풍처럼 아름답게 펼쳐있다. 그리고 오른쪽 위로 응진당(보물 1183호)이 버티고 있다. 응진당은 나한전이라 하는데, 부처님 제자 중 신통력이 뛰어난 열여섯 나한들을 모신 전각이다.

응진당 돌계단 옆의 담쟁이덩굴과 뜰 앞에 핀 소담한 보라색 수국이 잘 어울린다. 또 담장 위 제멋대로 자란 머위도 한여름 녹색의 무성함을 자랑한다.

 미황사 응진당
미황사 응진당전갑남

미황사의 대웅전이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소박함이 있다면, 응진당은 화려한 단청으로 치장하여 대조를 이룬다.

다음엔 달마산 정상까지

미황사 이것저것을 둘러보는 데 지루함이 없다. 아무데나 눈길을 주어도 아름다움뿐이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미황사는 사찰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건물과 건물사이가 넓어 답답함이 없다. 복잡하지 않은 한가한 공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딱딱해 보일 것 같은 정갈한 돌담과 돌계단도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간간히 불어오는 산바람으로 더위의 후덕 지근한 불편함이 사라진다. '조용한 기도도량', '묵언참선 중'이란 안내판이 곳곳에 서있다. 발길도 조심스럽다. 달마상이 있는 뜰에서 한 보살님이 잡초를 뽑고 있다. 얼마나 더우실까!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신다. 살짝 말을 걸어본다.

 풀을 뽑고 계시는 보살님
풀을 뽑고 계시는 보살님전갑남

"보살님, 해가 숨을 죽이면 하시지, 더위에 힘들지 않으셔요?"
"힘이야 들지요. 그래도 풀 한 포기 한 포기 뽑다보면 잡념도 없어지고, 더위도 잊어요."
"아! 그러세요?"
"내 호미가 지난 자리가 얼마나 말끔해요. 우리 미황사를 찾는 분들이 정갈하면 더 좋아할 거구요."

보살님의 밀짚모자 아래로 드러난 잔잔한 미소가 참 아름답다. 달마산 정상까지 산행을 못한 게 못내 아쉽다. 탁 트인 시야에 펼쳐질 남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마음에 그리면서 우리는 한반도 땅끝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미황사 #미황사대웅보전 #미황사응진당 #전남 해남 #땅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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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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