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3차 국민촛불대회'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 실업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신규 취업자가 47만 명 증가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꼼꼼히 살펴보면 유독 청년층의 취업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 최근 경기회복에 따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청년층의 경우 한 해 동안 약 8만3000명,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누계하면 무려 1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난 15년간 수출은 예외없이 호조를 보였고 경기가 회복됐던 시절이 중간 중간 있었지만 단 한 해도 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난 적은 없었다.
전반적인 고용지표와 청년층의 고용지표가 따로 놀고 있는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만성화된 청년실업 문제를 더 이상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은 신자유주의가 확산된 이후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청년 노동시장과 일반 노동시장 사이의 괴리가 확대되는 추세도 여러 국가에서 종종 발견된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필자는 오히려 다른 나라의 경험을 뛰어 넘는 보다 과감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단순히 베끼는 정도로는 한국의 청년실업 문제가 너무나 많은 사회적 병폐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은 사회적 안전장치가 대단히 미흡하다. 비유하자면 위로 향하는 사다리는 좁고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미끄럼틀만 사방에 널려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취약계층의 경우 해당 집단을 타깃팅하는 정책을 쓰지 않고 전체를 포괄하는 정책에만 의존할 경우 문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시장의 분절화와 불균형이 초래하는 고통이 아래로 집중되는 구조에서는 전체를 위해서라도 아래를 끌어 올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차별과 차이를 줄여야만 모두의 안정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사회는 무한경쟁의 출혈을 다수에게 강요하는 비효율성을 발생시킨다.
청년실업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그렇다면 사회적 안전장치, 혹은 사회적 보호가 청년실업자에게 특별히 제공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는 청년들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은가?
물론 맞는 지적이다. 예컨대 장애인, 노약자 등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훨씬 시급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도 제대로 배려되지 않는 사회에서 청년들까지 국가 재정으로 보호해야 하는 것은 과도한 게 아니냐는 비판적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용 안전망에 관한 한 청년실업자의 우선순위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장애인, 노약자, 질환자 등을 흔히 '구빈곤 집단'이라 부르는데, 여러 가지 사유로 노동능력이 열악한 집단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는 고용 안전망보다는 전체 사회보장 제도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물론 고용안전망은 전체 사회보장 제도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고용안전망은 '구빈곤 집단'보다는 이른바 '신빈곤' 집단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될 필요가 있다. 신빈곤 집단이란 노동능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음에도 고용불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거나 빈곤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없는 '근로빈곤', 즉 워킹푸어를 일컫는다. 후술하고자 하는 청년실업자를 위한 실업부조 제도의 도입은 실상은 워킹푸어 전체의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청년실업의 위험성 가운데 하나는 한 번 실업을 겪게 되면 노동력의 질적 저하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최초로 사회 진출에 실패를 경험한 이후에는 장기실업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고, 향후에는 하향 이동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청년 노동시장은 전통적으로 매우 역동적이었다. 경제성장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산업구조가 빠르게 고도화되었기 때문에 청년을 위한 고용안전망의 필요성이 별로 대두되지 않았다. 노동력 수요가 넘쳐 났고 청년 노동시장은 급격히 학력 수준이 높아졌다. 청년 노동력의 양적, 질적 성장은 다시 강력한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핵심 동력의 하나였다. 정리하면 청년 노동시장과 거시경제, 그리고 교육기회 확대 사이에 선순환 구조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선순환 구조가 일거에 악순환 구조로 대체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청년층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실업 또는 미취업의 후유증이 훨씬 오래 간다. 또, 청년실업은 성년실업에 비해 경기하락의 충격에 훨씬 민감하다. 외환위기라는 급성 충격과 이후 이어진 신자유주의 고용 불안이라는 만성 충격에 청년은 더 큰 실업의 충격을 받았고 그 후유증이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많은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 일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고 국가 전체의 성장 잠재력은 더욱 하락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고등교육은 어떠한가? 한편으로 고등교육이 과잉되었다고 비판받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고등교육과 직업 사이가 과소 연계되고 있다고 지적된다. 학교는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또 한 축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고용안전망의 기초 제도, 실업부조청년실업자를 위한 고용안전망의 가장 기본은 실업부조 제도에 있다. 실업부조란 사회부조의 하나로 실업보험과는 달리 제도 가입이라는 '배제의 조건'을 달지 않는다. 실업보험은 보험에 가입해서 일정한 보험료를 납부한 자에 대해서만 수혜를 주는 데 반해 실업부조는 국가가 일정한 조사를 거쳐 수혜자를 가려낼 뿐이다.
실업부조 제도는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사정에 있는 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 것이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모든 국민이 수혜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보편주의 원칙에 입각하되, 보험 방식으로 보호될 수 없는 자만이 수혜 범위에 들어올 수 있도록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 설계되는 것이다.
청년실업자 집단은 엄격한 보험 방식으로는 고용안전망을 제공받을 수 없는 집단이다. 직장 경험이 없거나 직장 경력이 짧아 실업보험 수혜 자격을 취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저임금 시간제 아르바이트가 늘면서 자격을 얻을 수 있으나 사용자가 보험료 납부를 회피함에 따라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국가에서는 실업보험과 함께 실업부조를 도입함으로써 청년실업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OECD 24개국 가운데 13개국이 실업부조 제도를 갖고 있다. 실업부조가 없는 국가 가운데 상당수는 부조의 성격을 실업보험 제도를 갖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청년 고용안전망 제도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 국가는 한국 이외에는 미국, 멕시코 등 소수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실업부조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