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겉그림<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비아북
제 1권에서도 밝혀주는 바가 있지만, 황제를 둘러싼 권력 기생충들은 은자 피에르가 본 예루살렘 탈환에 대한 환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무지한 군중들은 정권의 선동에 무지와 편견으로 쉽게 십자군에 뛰어든다. 가난한 군중들이 정치권력의 기생충들이 벌이는 숨은 야욕에 쉽게 놀아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제 2권은 군중십자군이 휩쓸고 간 뒤, 노르만의 전사 보에몽이 이끄는 1차 십자군의 본대가 니케아와 안티오키아를 점령하고, 마침내 예루살렘까지 입성하는 장면을 그려낸다. 그 과정 속에서 정의를 위한 논쟁이 터져 나오지만, 그 어떤 정의보다 힘이 곧 정의가 된다는 사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마이클 샌더스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전 세계를 강타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아테네 사람이 멜로스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했고, 또 아테네 사람들이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고, 소크라테스도 결국 힘을 가진 국가의 악법에 의해 사형을 당했는데도, 아테네 사람들은 힘을 지닌 국가에 맹종하며 살았다. 정의를 주장하긴 했지만 결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 2권을 읽는 동안 그의 <정의>가 떠오른 것도 그 때문.
제 3권은 이슬람 지역에 탄생한 네 개의 십자군 국가들의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을 다루고 있고, 예루살렘 왕국의 멜리장드 공주를 내세워 무슬림과 십자군 사이의 공존도 모색하지만, 무슬림의 반격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평화와 공존을 위한 메시지가 아무리 정당하다 해도 전쟁을 통한 평화와 공존은 침략전쟁을 미화하기 위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다는 걸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