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8일 경기도의 한 국민임대주택 상담센터에서 청약 접수 중인 모습
선대식
두 번째로 알아본 건 국민임대주택. 지금으로선 자가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고, 안정적인 주거공간만 마련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는 기분. 그런 면에서 값싸게 제공되는 임대주택은 최적의 조건이었다.
부동산, 자동차 등의 자산이 없고, 소박한 소득의 나로서는 기본적인 기준에서 걸릴 건 없었다. 또한 다행히 국민임대주택은 가장 작은 규모(39제곱미터. 약11,8평)에 한해 단독세대주도 나이제한 없이 지원이 가능했다. 12평 정도면 원룸보다 크고, 혼자살기는 딱 적당한 규모 아닌가. 들어갈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공급되는 주택 자체가 매우 적었다. 올해 서울 SH공사의 국민임대주택 공급계획을 보니, 39제곱미터 크기의 경우 단 241호에 불과했다. 일개 구나 동도 아니고 서울시 전체에서 241호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우선공급을 제외하면 수는 훨씬 더 줄어들 터. 일반공급으로 여기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게다가 국민임대 모집 공고를 보면, 젊은 1인가구를 위한 대책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일단 국민임대는 우선공급 물량으로 신혼부부, 한부모·다문화가정, 3자녀 세대, 장애인, 고령자, 국가유공자 등에 국한해 마련된 게 많다. 일반공급의 경우에도, 가점(세대주 나이, 부양 가족수, 지자체 거주기간, 청약횟수 등)이 높아야만 당첨이 가능하다. 젊은 단독세대주는 가점 받을 사항이 매우 적다. 서울은 더더욱 치열하다고 한다.
물론 더 사정이 급하거나 안 좋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이들을 위한 주거복지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문제는 이제 소수 특정계층 뿐 아니라, 젊은 1인가구를 포함해 광범위한 사람들이 값싼 국민(공공)임대주택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거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4.8%(OECD 평균은 11.5%)에 불과한 수준으로는 턱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국민임대는 모집공고부터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20~30대 초중반의 서울 단독세대주로서는 당첨가능성도 희박하다. '때늦은 독립'을 위한 해결책, 여기도 없었다.
[대안3 월세] 나가는 순간 엄습할 경제적 궁핍, 지레 겁먹다정부에서 보증·제공하는 대출이나 임대주택을 활용할 수 없다면? 시장에서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방법 밖에는 남지 않는다. 실제 살펴보니, 젊은 1인가구를 위한 주거공간은 고가의 민간공급주택밖엔 없었다. 그러나 천상계에 있는 것 같은 집값·전세값은 나 같이 평범한 젊은이들로서는 마련할 방법이 없다. 결국 월세를 사는 게 유일한 선택지다.
서울의 원룸 월세 수준은 얼마나 될까? 대강은 들어봤지만, 진지하게 살펴본 건 처음이었다. 지금 살고 있고, 계속 살고 싶은 마포구 쪽으로 알아봤다. 인터넷과 동네 부동산을 돌아보니, 저렴한 5~6평 원룸의 경우 대략 보증금 500~1000만원에 월세 40~50만 원 정도.
이보다 괜찮은 중간 수준 이상 원룸은 엄두가 안 났고, 매우 열악한 쪽방·반지하는 영 내키지 않았다. 이왕 독립하는데 근사하진 않더라도, 최소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정도는 돼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보증금 최대 1천만 원, 월세 최대 50만 원' 범위를 기준으로 삼았다.
보증금은 어떻게든 연말까지는 마련해 보도록 하자. 더 큰 문제는 월세였다. 매달 50만 원이 빠져나가고, 관리비, 각종 공과금까지 하면 10만 원 쯤은 그냥 추가될 터. 급여수준이 낮거나 평범한 편에 속하는 사람으로선 상당히 부담되는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떠오르는 대학졸업장과 맞바꾼 학자금대출 1350만 원. 일부는 갚았지만 여전히 많은 액수가 남아, 가슴 한쪽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는 이 몹쓸 짐이 또 뇌리를 스쳤다. 그 중 학교에서 빌린 500만 원은 당장 내년부터 상환(3년 동안)해야 하는 실정. 은행대출 분의 이자까지 치면, 내년부턴 매달 17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세에 공과금, 학자금대출 상환까지 매달 기본적으로 약 77만 원이 사라진다. 거기다 밥값, 교통비, 통신비 등 꼭 필요한 생활비를 더 보태고 나면? 저축은커녕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즐길 용돈도 남아나지 않겠다는 곤궁한 느낌이 번뜩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떤 선택이 현명할까. 그리 간이 크지 않은 나로서는, 독립의 낭만을 만끽하는 순간부터 내 일상을 파고들 경제적 궁핍과 그에 따를 정신적 피폐함을 감당하기 두려워졌다. 나이 꽉 찬 캥거루가 돼 자괴감에 빠지더라도, 당장 생명을 위협하듯 급한 일은 아니니 그냥 지금처럼 부모 집에 얹혀 있는 게 더 누가 봐도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어느 순간 '에라 모르겠다'며 출가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현재 내 기분은 그냥 이 상태로 지내는 게, 악몽이 될게 자명한 독립생활보다 낫겠단 판단이 앞선다.
언제쯤 홀로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방에서 올라와 고시원에 살며 "서울에 집 있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를 것"이라 말하던 한 지인이 생각난다. 서울에 집 놔두고 독립하고 싶다며 투덜대는 모습, 타지에서 힘겹게 자취하는 친구들이 보면 "참 한가한 소리 한다"고 질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서울에 (부모)집이라도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인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위안삼고 싶진 않다. 20대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서른 넘어서까지 홀로서기는커녕 인간생활의 필수요소인 최소한의 주거공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건, 아무리 따져 봐도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쁜 짓 안 하고 30여년을 착실하게 산 사람들이, 안락하고 넓은 공간은 아닐지라도 단칸방하나 얻기도 까마득한 게 상식적으로 온당한 상황일까?
이번에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의 주거정책은 아직도 '부모와 함께 살다가 결혼하면 독립'하는 모습을 '정상'으로 가정한 설계에서 못 벗어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결혼 전 독립은 '예외'로 보고 아무런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은 상황인 듯하다.
그러나 10년 전보다 초혼연령이 2.5세 가량 늦어졌다. 결혼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결혼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조건만 악화되는 상황에서, 스물 후반·서른 너머의 '캥거루족'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비혼이나 성소수자 등 새로운 형태의 가구 등장도 간과할 수 없다. 주거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해보이나, 변화의 작은 조짐조차 요원해 보인다.
대체 난 언제쯤이면 홀로 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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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착실하게 살았더니 '캥거루족' 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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