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진평왕(조민기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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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뭄이 지거나 홍수가 생기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에 구호정책이 집중적으로 시행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따르면, 제26대 진평왕은 재위 11년 7월(589.8.17~9.15) 낙동강 유역에 홍수가 발생해서 주택 3만 360채가 떠내려가고 200여 명이 사망자가 발생하자, 재해지역에 특사를 파견해서 양곡을 배급하고 구제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신라왕들의 복지정책은 꼭 비상시에만 시행된 게 아니었다. 그것은 평상시에도 수시로 이루어졌다. 예컨대, 제27대 선덕여왕은 재위 원년 10월(632.11.18~12.16) 특별한 재난이 없는데도 전국 각지에 특사를 파견해서 자활능력이 없는 환과고독(鰥寡孤獨)에게 양식을 배급했다.
'환과고독'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사료에도 자주 등장하는 부류로서 과거 동아시아에서 복지정책의 대표적인 수혜자들이었다. <맹자> '양혜왕' 편에서는 "늙어서 아내가 없으면 환(鰥)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으면 과(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으면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으면 고(孤)라 한다"고 하면서 "이 네 가지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나라) 문왕은 정치를 시작하고 인(仁)을 베풀 때 반드시 이 네 부류로부터 먼저 하셨다"고 했다.
신라왕들, 비상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약자를 우선했다
기원전 3세기 이전의 맹자도 환과고독을 배려하고 서기 7세기의 선덕여왕도 그렇게 한 것을 보면, 홀아비·과부·독거노인·고아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동아시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정치의 기본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복지문제에 관한 한 동아시아에서 고대로부터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에서, 신라왕들이 비상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했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복지정책을 호소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백성들에게 다가갔다. 이른바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실시한 것이다.
예컨대, 제13대 미추왕(미추이사금)은 재위 3년 3월(264.4.14~5.12) "늙거나 가난하여 혼자 살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일부러 지방 순행을 떠났다. 제33대 성덕왕도 환과고독이나 연로한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일부러 지방을 순시했다. 다른 왕들의 경우에도 이런 사례가 발견된다.
이런 점들을 보면, 신라왕들이 복지를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 두고 이 문제에 열성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관료집단과 기득권층이 그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주류세력이 '나는 복지가 싫다!'고 외쳤다면, 신라왕들이 왕궁을 비우면서까지 마음 놓고 복지정책을 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정리한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216쪽에서 노 대통령은 "(복지) 예산을 더 주고 싶었지만 관련 부처에서 사업을 빨리 빨리 만들어 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복지정책이란 것이 단순히 통치자의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관료집단이나 기득권층의 합의까지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탄식이다. 신라 관료집단이나 기득권층은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후세 사람들의 욕을 먹을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라왕의 복지정책, 이게 다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