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뱅자맹 모네는 '마음치료사'다. 공권력의 부당한 탄압을 규탄하는 강정마을사람들 집회에 함께 하고 있다.
이주빈
섬은 바람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바람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파도는 높아진다. 높은 파도는 사람의 배를 포구에 묶어둔다. 거친 바람은 인간의 거처를 낮게 웅크리게 한다. 섬마을 집들의 지붕이 낮은 이유다.
또 바람은 땀구멍을 타고 몸 안에 들어와 혈소판을 흔든다. 눈을 지그시 감으면 그 바람결 따라 길을 나서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물컹한 그 무엇이 사람의 길, 생명의 길을 지어내는 것!
'바람의 말'을 타고 나타난 프랑스 출신 뱅자맹 모네프랑스 출신인 뱅자맹 모네(31)도 어쩌면 그렇게 '바람의 말(馬)'을 타고 왔는지 모른다. 그가 한동안 머물렀다는 네팔, 히말라야 능선에 휘날리던 룽다처럼. 태어난 곳이 프랑스의 화산지대여서 제주도가 친숙하다는 그는 "바람과 결혼했다"고 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매순간 바람을 만났고 바람을 느꼈어요. 네팔에서는 바람이 다양한 방향에서 불어오는데 제주도에 요새 부는 바람은 날마다 항상 같은 방향에서 오는 것 같아요. 남동쪽에서요. 오키나와서 불어오는 바람인가요? 군사기지로 겪는 아픔이 비슷하니까요."그는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에서 제주도와 오키나와가 품은 아픔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있었다. 그렇다, 계절풍은 여름엔 남쪽에서 불어온다. 거기 바람 지나온 자리 어디쯤 오키나와가 있을 테고, 그가 흘러온 인생의 별점 하나 있을 게다. 그렇게 바람과 함께 흐르다가 제주도를 만났으니, 지독한 인연이다.
그는 13년 동안 약 40개 나라를 유랑하고 있다. 강정마을과는 지난 5월에 연이 닿았다. 미국 유니언신학대 정현경 교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과 함께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하러 와서다.
6월부터는 아예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텐트를 치고 살며 마을 해군기지 대책위원회 국제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프랑스어와 스페인어가 자유로운 그는 온라인 네트워크(
www.savejejuisland.org)에 강정마을 소식을 전하는 글을 날마다 올리고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통해 군사주의의 위험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이 국제적인 네트워크엔 세계 각국의 저널리스트, 교수, 정치인, 학생, 평화활동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후원금을 모아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상공사 감시용 보트를 살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온라인 네트워크에 올린 소식들에 대해서 유럽과 아메리카대륙, 러시아와 일본, 레바논 등지에서 많은 조직과 활동가들이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미국 하와이와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즉각적이고 뜨거운 편이라고. 그는 "두 곳 모두 미국에 의해 군사기지가 건설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주도 강정마을 소식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는 "미국은 가장 많은 파괴를 일삼고 있는 나라"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6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예멘, 시에리아 그리고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미국은 세계의 구세주를 자처하고 있지만 파괴자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군사주의로는 어떤 긍정적인 것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군사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어떤 파괴를 했는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이게 너희들이 바라는 모습이니?'.그리고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를 지배해선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제주도도 자기 스스로의 목소리를 가져야 하고, 다른 이에게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주도는 지금 군사기지 대신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평화의 소리를 들어줘야 합니다."삐딱하게 보는 이들은 그의 말에서 전 세계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는 '반미주의자'와 '극렬한 평화활동가'의 냄새를 맡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직업은 '마음치료사'다. 치료수단으로는 마그네틱테이프나 마사지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저 눈빛 나누기만으로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치료하기도 한다. 강정마을에서는 지금까지 30여 명의 상한 마음을 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