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재단측이 청소노조 분회장과 전국공공서비스노조 간부 5명을 대상으로 농성중 발생한 비용 2억8천134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낸 가운데, 지난 7월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서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지원해온 배우 김여진씨가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권우성
그 시대에는 양희은의 '아침이슬'도, 송창식의 '고래사냥'도 금지곡이었습니다. 귀밑을 덮는 장발도, 무릎 위 몇 cm의 미니스커트도 단속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 대명천지에 그 비슷한 일들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40여 년 전, 장발이 귀밑까지 내려왔는지, 미니스커트가 무릎 위 몇 cm까지 올라갔는지, 유신권력이 자를 들이대며 재어 보았듯이, 지금은 민주사회에서 '양심의 자유'라 부르는 '사람의 생각'에다 잣대로 들이대고 있습니다.
국민의 대표가 모여있다는 국회에서는 '천안함 잣대'로 '확신'의 깊이를 검증했지요.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인준 청문회 때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국회의원들, 그리고 수구언론이 보였던 사상검증은 중세 마녀사냥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겨우 이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무리들이 우리사회의 주류입니다.
당신이 근무하는 옆집 동네 MBC에서도 참으로 한심한 꼬락서니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방송 긴급조치'를 발동했지요.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하여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하거나 사실을 오인하게 하는 발언이나 행위로 인하여 회사의 공정성이나 명예와 위신이 손상되는 경우" 시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로 나올 수 없다는, 긴급조치 말입니다.
이 조건을 채울 수 있는 시사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는 '자기 생각'이 없는 '무뇌아'들 뿐이겠지요. 더구나 이런 방송 긴급조치가 요즘 사회적 발언을 활발하게 하는 김여진씨의 출연을 막기 위해 취해진 '김여진 법'이라니, MBC가 참으로 왜소하고, 졸렬하게 보입니다.
천안함 마녀사냥도 그렇고, '김여진 법'도 그렇고, 이 두 가지 모두 '사람의 생각'에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 전제국가에서나 있음직한 일이지요.
진실이 생명인 언론이 '진실 가리기'에 안간힘이름 밝히기가 두려웠던 '공포의 시대'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 일본의 진보 월간지인 <세까이>에는 'TK생'이라는 '익명'의 필자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과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 사례들을 전했습니다. 이름이 밝혀지면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였으니, 이름을 감추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했습니다. 암흑시대에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TK생'은 더 이상 '익명'이 아니어도 괜찮은 민주 시대에 자신의 존재를 밝혔습니다. 전 KBS 이사장을 지낸 지명관 교수였습니다).
<미디어스>에 실린 '익명'의 당신 글을 보면서, 그리고 <오마이뉴스>에 난 'KBS 분위기 살벌...'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의 KBS 중견기자의 말을 보면서 1970년대 그 살벌했던 시대의 'TK생'이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불행하고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어쩌다 KBS가 이렇게까지 되어버렸는가.
지금 KBS '도청 사건'을 둘러싸고 되어가는 일들이 희한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KBS가 영영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망가지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실'을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언론이 '진실'을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도청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KBS 쪽의 첫 반응은 이른바 '귀대기' '벽치기' '전통적인 취재 방식' 등의 주장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취재활동'이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당 쪽 사람들을 겁박했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에게 "내년 총선 때 봅시다"라고 협박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지금까지 수신료 인상 때문에 참았는데, 이제 민주당을 봐주지 않겠다"는 식의 말들이 공식적인 회의 시간에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고 당신은 전했습니다.
그 다음 나온 주장이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행위를 한 적은 없다'는 해괴한 주장이었습니다. 이 말은 누가 봐도 '어떤 종류'의 도청행위를 하기는 했는데, '민주당이 주장하는 그런 형태'의 도청은 하지 않았다는 강변으로 들렸습니다.
그 뒤 경찰에서 정치부 장아무개 기자의 집을 압수수색하자, KBS 보도본부는 '언론탄압'이라 비난했고, 얼마 뒤 KBS 정치부 이름으로 나온 성명서에서는 민주당 비공개 회의 내용을 회의와 관련된 '제3자의 도움'으로 파악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정치부 특정 기자를 도청 당사자로 지목하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추측성 의혹 제기가 전혀 근거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법적 대응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는 으름장도 잊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경찰이 압수수색한 KBS 정치부 막내기자라는 장아무개 기자의 노트북과 핸드폰이 사건 발생 직후 모두 분실되어 새 기기로 교체가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이한 우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KBS 사건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실제 발언 내용과 토씨까지 같다는 '녹취록'이 어떤 경로로 입수되었는가, 둘째, 그 '녹취록'이 어떤 경로를 통해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에게 넘겨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매우 엄중한 사안입니다. 첫 번째 사안은 범죄행위인 '도청'과 관련된 것이고, 두 번째 사안은 KBS가 도청을 했건, 제3자의 도움을 얻어서 취득했건 간에 그 '녹취록'을 한나라당 의원에게 넘겨주었다는, 언론기관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정치 공작'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KBS는 그동안 첫 번째 사안인 '도청'과 관련해서는 여러 차례 말을 바꾸어 가면서도 대응을 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사안인, 한나라당에 비공개 회의 '녹취록'이 어떤 경로를 통해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KBS 친위세력들이 살아온 길, 당신이 더 잘 알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