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이 7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회의에서 해병대 총기사건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한 케이블 방송을 보았다. 그 방송은 해병대 총기 사건을 다룬 토론 프로그램이었다.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군대에서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군 인권센터 관계자의 주장과, 군대 특히 해병대라 특성상 '일반적인 인권'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나를 아연실색하게 한 건 높은 군 고위 지휘관을 지낸 한 패널의 말이었다. 그는 "원칙적으로 인권은 필요하지만 국토방위와 원만한 부대 운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그 권리가 무시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군 인권센터 관계자의 주장을 "극히 일부인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매도하는 무책임한 인권 타령"으로 치부했다.
방송을 보며 나는 1991년 겨울, 입대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부분 그렇듯 입대 영장을 받은 후 입영열차를 타기 두어 달 전부터 갖가지 환송 모임이 열렸다. 그 자리에 함께한 예비역이나,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친구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군대에 대해 여러 조언을 했다. 이야기의 결론은 빨리 부대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임을 포기하고 '군발이'가 되라는 것이었다.
예비역 선배는 자신이 군대에서 얼마나 처참한 환경을 잘 견뎌냈는지를 말했다. 집합을 통한 잦은 구타와 가혹행위, 한겨울 새벽 연병장에서의 비상 집합과 '원산폭격', 사랑하는 여자 친구나 친누나를 소재로 한 선임병의 성희롱 발언을 주먹 불끈 쥐고 참았던 인내심 등등. 결국 소위 '사제(일반 사회생활의 모든 것)' 정신을 버리고 '군용' 정신으로 빨리 거듭나는 것이 '훌륭한 군인'의 길이라고 했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군에 입대한 동창이 첫 휴가를 나와 만났던 일도 기억난다. 이제 막 대학 1학년이 된 우리와 달리 그의 푸른 군복은 마치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짓는 느낌이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이등병 모자를 쓰고 내뿜는 담배 연기, 그 모든 것이 우리 눈에는 멋있어 보였다.
그때 유난히 독특했던 것은 그 친구의 말투였다. 친구는 담배 한 모금을 빨아 깊숙이 마시며 "아, 이 사제 공기"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내내 친구는 '사제'를 외쳤다. "사제 공기"로 시작한 그는 음식을 먹기 위해 나온 포크에 대해서도 "사제 포크", 새로 사다 준 담배에 대해서도 "이 사제 담배",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제 인간을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다"며 이등병의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외친 '사제'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제'와 '군용'이라는 구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제 인권'은 '군대'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고위 군 출신 인사의 말을 듣고 새삼 깨달았다.
군 자체 특별 조사, 나는 못 믿겠다해병대는 7월 17일 "'병영 악·폐습 척결을 위한 혁신기획추진단' 구성을 통해 그동안 문제가 돼 온 병영생활 개선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이번에 문제가 된 해병 기수 개념을 재정립하고, 선임병과 후임병이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강령을 수립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군이 스스로 개혁하고 변화를 다짐해도 그들의 '지독한 특수성' 탓에 좋은 변화를 기대하는 일은 애초부터 무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한 해병대 부대원에게 '부대 내 구타' 진정을 접수하고 실시한 직권조사 결과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인권위는 조사를 통해 해병대 내에 구타행위가 만연하고, 이것이 일종의 해병대 전통으로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은폐·축소한 해당 사단장·연대장을 경고 조처하고 관련자 11명을 징계하도록 해군참모총장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해병대는 이런 국가 인권위원회의 지적을 받고도 별다른 각성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