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논이 있는 평범한 시골길, 왼쪽이 저수지가 있는 쪽으로 가끔 인사 사고가 나는 곳이다.
오창경
지루한 장마의 끝보다 곧 이어질 작년과 같은 폭염이 지레 겁이 나는 여름 속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맘때면 극장가에는 더위를 한방에 날려줄 공포 영화의 예고편과 방송가에서는 납량 특집 드라마에 대한 화제로 떠들썩하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수다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도 여름날의 귀신 이야기는 단골로 등장한다. 귀신이라고 여겨지는 존재들이나 환영 같은 현상에 연예인들이 더 시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귀신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더위를 잠깐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도 귀신 이야기는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좋아한다. 어린 시절에는 귀신이 정말 무서웠다. 귀신의 존재를 정말 믿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귀신 따위에 대한 두려움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꺼려하는 정확히는 여자들이 더 꺼려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게 된다. 그 것은 어둠이 내리는 저녁 무렵에 혼자서 걷기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시골에는 마땅하게 운동시설도 없고 함께 운동을 할 친구도 없어서 혼자서 집 앞 농로를 걷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경지 정리가 잘 된 논 사이의 길은 농기계가 잘 다닐 수 있도록 포장도 잘 되어 있고 반듯해서 걷기 운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휴대용 손전등 하나만 들고 어둠 걸어 다니는 내 모습을 멀리서 누군가 본다면 나를 귀신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시골 마을은 어둠이 내리면 말 그대로 가로등도 지루해할 만한 적막 속에 갇히게 된다. 작년 가을 어느 날에도 나는 한적한 시골 농로를 걷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차 한 대가 내가 운동하는 길 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나는 길 가장자리로 피했고 차가 지나가는 짧은 순간, 자동차 불빛 속에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시골 할머니들이 주로 입는 몸빼 바지에 좀 얇아 보이는 셔츠를 입고 추운 듯 팔짱을 낀 아주머니였다. 얼굴 모습은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이 귀밑까지 내려온 단발머리인 여자로 보였다. 실루엣으로는 동네 아는 아주머니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아주머니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 차는 지나가버렸고 어둠 속에는 나의 공허한 인사말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