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원표공원에 마련된 잡년행진 부스
박가영
언젠가 TV에서 '공연의 달인'이라 불리는 한 가수와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MC는 그에게 공연을 절정에 치닫게 하기 위해 관객의 흥분을 어떻게 하면 한층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가수가 답했다.
"많은 방법이 있지만, 물을 뿌리는 게 가장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그래서일까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한숨을 내쉬기보다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하는 행진이라니, 얼마나 재밌을까!' 하며 집을 나섰다.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 안,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씩 흘끗 내 짧은 바지를 스쳐 지나갔다. 사놓고도 한 번밖에 입을 수 없었던 비운의 바지였다. 키가 커서, 혹은 다리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아니, 어쩌면 내가 이 바지를 입지 않았던 것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였다. 혀를 끌끌 차던 아주머니의 언짢은 표정과 위, 아래를 노골적으로 훑어보던 눈빛을 감당해내기에 나는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옷장을 벗어난 짧은 바지를 얼른 카디건으로 가렸다. 시선을 견딘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