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마을에서 건설되고 있던 A 골프장
황윤희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는 골프장을 도시기반체육시설로 규정하여 개발사업자에게 토지 강제수용권을 주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골프장의 공익성을 최종 부정한 것이다. 2008년 12월 헌법소원이 제출된 후 2년 6개월만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골프장은 시설이용에 드는 비용이 사회경제적 수준에 비춰 과도하기 때문에 소수자에게만 접근이 용이한 시설로, 공익을 목적으로 한 체육시설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동안 "골프장이 공익시설인가?"라고 반문했던 국민들에 대한 뒤늦은 답변인 셈이다.
이번 판결를 이끌어낸 이들이 누굴까? 헌법소원을 내고 결국 한 나라의 법을 바꾼 이들은 사회의 엘리트나 지도층이 아닌 안성시 보개면 동평리 동양마을의 주민들이다. 평균연령이 60세는 족히 될 어르신 40여 명이 그 주인공이다. 어르신들은 지난 2008년 마을 뒷산으로 골프장 공사가 진행되자 10만 원씩 내서 헌법소원에 드는 기금을 마련했다. 평생 땅과 가까웠던 어르신들은 없는 살림에도 주머니를 헐어 돈을 보탰다. 기금을 낸 주민들 중에는 독거노인들과 기초생활수급자도 있었다.
그렇게 모은 기금으로 어르신들 이름 하나하나를 올려 헌법소원을 내고 지금까지의 시위비용을 마련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과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들이 노년에 평생 안 하던 시위와 집회를 하느라 바쁘셨다. 인터뷰를 위해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은 4년 동안 골프장과 싸우느라 안 가본 데가 없다며 웃으신다. 헌법재판소, 서대문경찰서, 수원법원, 평택지청, 서울시청까지. 대절한 관광버스가 이 고령의 시위대(?)를 날랐다. 안성경찰서나 안성시청은 드나든 횟수를 기억하기도 어렵다.
안갑승 동양마을 이장님과 이택순 주민대책위 총무님이 그 과정에서의 두 기둥이었다. 총무님은 타지에서 기업체를 경영하다 노년을 보내기 위해 동양마을에 왔다. 그는 마을에 '골프장 사태'가 벌어지고서야 동네분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총무님은 4년 동안의 싸움을 두 권의 노트에 꼼꼼히 기록했다. 그 기록은 이제 마을의 역사가 되었다.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싸움을 끝내 지속시키고 기어이 법을 바꾼 이들의 승리의 기록이다. 마을 어르신은 그 노트를 두고두고 남겨 동네 후손에게 물려줄 거라 하셨다.
초복인 14일, 주민들은 복날 겸 헌법불일치 판결을 축하하는 잔치를 했다. 닭을 여러 마리 주문했다. 겨우 체면치레나 할 저렴한 비용에도 주민들 법정대리인으로 기꺼이 나서주었던 최재홍 변호사도 방문한다. 자연을 아낄줄 알고 개발의 이면을 잘 아는 이 젊은 변호사는 인사를 많이 받았을 듯 하다.
조상 묘 사라지고,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그 싸움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