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신부, 문정현', 그가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나타났다. 그는 7월자로 강정마을 주민이 되었다.
이주빈
바람조차 뜨거운 7월의 제주도 강정마을 중덕해안. '길 위의 신부'로 알려진 문정현 신부가 스쿠터를 타고 나타났다. 스쿠터는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가 선물했다. '길 위의 신부'가 강정마을 주민으로 새 삶을 시작한 것과 사제 서품 이후 처음으로 주소지까지 옮겨서 '민간인 마을'에 거처를 마련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라고.
그는 "축하 선물이 아니라 코가 걸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지 45년 만에 처음으로 주교님에게 받은 선물"이라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은 "주민들도 신부님을 강정마을 주민으로 묶어두려고 여러 가지 코를 걸었다"고 거들었다. 동네에서 가장 쓸 만한 빈 집을 알아봐 주었다는 것이다. 문정현 신부는 그렇게 2011년 7월 자로 강정마을 주민이 돼가고 있다.
앞서 얘기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길 위의 신부'라고 부른다. 미군기지 이전으로 강제이주를 당해야 했던 매향리,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그는, 길 위에 있었다. 단군 이래 최대 매립사업이라던 새만금 방조제 사업으로 삶터를 잃은 계화도 주민들과 함께 그는, 길 위에 있었다.
'평화바람'이라는 유랑단을 이끌고 전국 60여 개 도시의 길 위에, 그는 서 있었다. 용산참사 피눈물 채 마르지 않은 슬픈 거리에, 그는 서 있었다. 85호 크레인에서 수개월째 '정리해고 무효'를 외치고 있는 '김진숙을 무사히 내려오게 해달라'는 190여 대의 희망버스와 함께 그는 부산 영도 아스팔트에, 서 있었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 강정마을에 정착하다길이 자꾸만 그를 부르는 것인가 아니면 그가 스스로 길이 되고 있는 것인가.
"평택 대추리 싸움을 할 때였어. 'MBC 스페셜' 팀이 나를 주인공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며 한 달을 따라다니는 거라. 국방부, 미8군 앞 오만천지 차 몰고 돌아다녔는데 계속 따라다녀. 그러더니 어떤 날 전화가 왔어, 프로그램 제목을 정했다고. 그게 <길 위의 신부>야. 듣는 순간 딱 이거다 싶은 거야. 뭐랄까, 나의 좌우명이 생기는 것 같았어. 예수님은 '길 위의 사람'이거든. 발 닿는 대로 숙식을 하며 사람들과 함께 하셨지. 예수님에 비하면 난 풍요롭게 사는 것이지. 오토바이도 생기고, 살 집도 생기고…." 길이 좌우명이 된 것은 근래지만 그가 길에 나선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1975년 4월 9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해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지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고 말았다. 국제법학자협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한 바로 그날이다.
그날 '젊은 신부, 문정현'은 "초라하고 처절하게 노여워하는 유가족들의 눈빛"을 보았다. 이제는 고인이 돼버린 김수환 추기경·윤보선 전 대통령·함석헌 선생·윤형중 신부 등의 이름 뒤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올렸다. 무자비한 사법 살인의 책임을 묻는 성명이었다. 그렇게 그는 길에 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