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바다가 보이는 밖(내항)으로 나왔다. 쌀 수탈의 현장이자 '진포대첩'이 있었던 내항에는 안내판이 하나 서 있는데, 마쓰모토는 '해적', '약탈' '야만적', '왜구', '왜선', '만행' 등 격한 언어들이 들어 있는 안내문을 읽으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일본 젊은이들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김 해설사는 나이 든 일본인 중에는 안내판을 읽다가 화를 내며 그냥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인 중에도 일본으로 건너와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많지만, 이제는 모든 걸 잊고 한국이 좋아서 관광 왔는데 입구에 마음 상하는 글을 써놓았다며 불편해한다고.
"글쎄(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옛날에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었는지 사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지 않아 잘 모르겠다."
-여기는 일본이 3000톤급 선박 여섯 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부잔교(뜬다리) 4기를 설치해서 호남의 쌀을 수탈해갔던 내항(內港)이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쌀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던 가슴 아픈 장소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그동안 한국의 도시는 서울·부산만 알고 있었다. 전주에 관광 왔다가 가이드북을 보고 군산에 들렀는데 갑자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황당하다. 군산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옛날 어른들 잘못을 내가 사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아픈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자체가 미안하다."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빼앗아 36년 동안 탄압하고, 핍박했던 일도 모르나?
"그것은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다. 그러나 지배했다는 것만 알지 핍박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그리고 한국에 살면서 고생한 일본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헤어질 때(1945년 해방으로)는 껴안고 울었던 사람도 있었다는데···."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면서 죄 없는 백성을 많이 죽였는데 알고 있나?
"선조들이 조선 백성을 죽이고 나쁜 일을 저지른 것은 알고 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한으로 맺혀 있을 것이다. 또 얘기하는데 내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렇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이좋게 지내는 걸 원한다."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구 세관 전시장에서
세관 전시실로 이동하며 김옥분 해설사가 구 조선은행 건물을 가리키며 일본인이 세운 은행이라고 하자 야마모토는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1922년 은행 건물이 지어졌고,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더 많이 살았던 때(1919년)도 있었다니까 놀라워했다.
세관에 도착한 마쓰모토는 붉은 벽돌과 뾰쪽한 철탑, 물고기 비늘 모양의 지붕 등을 보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본식으로 지어진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르다고 하기에 대한제국 순종 2년(1908년)에 유럽 중세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라니까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산의 개항(1899년) 전후 시가지 모습과 수탈의 현장을 담은 내항 사진, 세관역사, 가짜 밀수품을 쉽게 판별하는 설명문과 함께 압수품(짝퉁) 등을 전시한 구 세관 내부를 돌아봤는데, 마쓰모토는 일제강점기 사진보다 압수한 밀수품들을 더 유심히 살펴봤다.
-이 건물은 대한제국 돈으로 건축되었다. 그러나 관리는 일본인이 했다. 또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의 영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면서 합법적으로 한국을 손에 넣으려고 모의했던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놀라는 표정으로) 일본이 관리하다니···. 옳지 않은 일인 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나 혼자라도 알게 된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돌아가면 주변에도 얘기하고, 지금까지의 역사관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높은 사람들은 자꾸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긴다. 지금의 한국-일본 관계를 어떻게 보나?
"일본 사람들은 중국이나 북한은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한국은 우호적인 나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 한국 사이에 일어나는 어지간한 분쟁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다케시마(독도) 분쟁도 마찬가지다. 대화로 해결했으면 좋겠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일본)는 아무리 중요한 역사라도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 상관하지 않는다. 독도 문제도 알고는 있지만, 관심은 없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애국심도 부러울 정도로 강한 것 같고."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이 있나?
"도쿄 시부야 주변에 한국영화 전용 극장이 있다. 그래서 가끔 한국영화를 보는데 '욘사마'(배용준), 이병헌이 멋있더라. 카라, 소녀시대도 좋아한다. 그리고 요즘엔 김연아 선수 이미지가 무지하게 높이 올라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어도 괜찮으냐고 물으니까 난색을 표했다. 기념촬영까지 하자고 했던 사람이 사진 공개를 꺼려하다니 이상해서 재차 물었더니 예민한 부분(쌀 수탈과 학살)까지 얘기해서 그런다고 했다. 야마모토는 헤어지기에 앞서 "아픈 역사는 내려놓고 좋은 관계로 교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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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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