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1991년 개소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전국적인 이슈가 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앞장 섰다.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주요 성폭력 사건들과 현재 남은 과제들을 정리하고, 한국사회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 현실을 총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 기자말
"성폭력 상담소지요? 00일보 000기자입니다. 곧 화학적 거세제도가 시작되는데, 이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취재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저희는 화학적 거세제도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라서…."
"네? 찬성하지 않는다고요!?"
최근 성폭력상담소에는 이런 취재 요청이 심심치 않게 반복되고 있다. 오는 7월 24일은 최근 제정된 화학적 거세제도(성폭력범죄자의성충동약물치료에관한법률)가 시행되는 날이다. 이에 앞서 기자들이 성범죄 근절에 대한 성폭력상담소의 입장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피해자들까지 가까이서 만나고 있는 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가 왜 성폭력 가해자 처벌 정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것일까.
2000년대 중·후반은 온 나라의 사람들에게 끔찍한 아동성폭력 사건들의 충격이 지속되는 시기였다. 안양 초등학생 살해사건부터 조두순 사건까지. 이 아이들의 상처와 죽음은 지금 '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와 같은 제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가해자 처벌 강화정책이 아동성폭력을 근절하리라는 장밋빛 희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벌어진 전자발찌 착용자의 성폭력 가해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용산 초등생 살해부터 조두순까지, 끊이지 않는 아동성폭력
지난 2006년 용산에서 성폭력 의도로 접근한 이웃 어른에 의해 살해당한 아동의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같은 해 겨울, 안양 지역에서 실종된 두 어린이는 2007년 사체로 발견되었고, 이후 검거된 범인은 성폭력 가해 후 살해했다고 자백한 바 있다. 2007년 봄, 제주도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여 끊이지 않는 어린이 유괴, 성폭력 사건에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였다.
2009년도에는 8살 어린이 성폭력 사건(일명 조두순 사건)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져 국민들의 분노와 걱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미미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2009년도의 충격과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듬해인 2010년에도 2월 부산에서 여중생이 납치·성폭력·살해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몇 달 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초등학생을 유인하여 성폭력한 사건이 벌어져 "어디 무서워서 애를 키우겠냐!"는 불안과 공포가 우리 삶을 깊이 흔들어 놓았다.
이런 잔학하고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정부와 정치권도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 성폭력 범죄자의 법정형을 높이고, 형법상 유기징역 상한을 25년에서 30년(가중시 50년)으로 늘렸다. 성인이면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해서 신상공개명령이 내려진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고,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우편으로 고지하도록 하였다.
전자발찌는 법률 제정 이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까지 소급적용 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여 작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일명 화학적 거세라고 불리는 성충동약물치료제도 또한 2010년도에 통과되어 앞서 말한대로 곧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적극적인 실행의지와 여론의 뒷받침에 비해 그 실행의 효과성에 몇 가지 의문들이 남아있다.
동의없는 화학적 거세, 실효성은? 글쎄
2007년, 전자발찌 제도를 처음 시작할 때 정책 입안자들은 성폭력 범죄의 재범률이 높기 때문에 이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성폭력의 재범률을 살펴보니 약 15%로 강력범죄의 평균 재범률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전자발찌 제도는 그 이후 2009년에는 미성년자 유괴범죄, 2010년에는 살인범죄로 대상을 확대하여 왔다. 최근에는 법무부가 강도죄로 적용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이제는 강도죄가 성폭력 범죄보다 재범율이 높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전자발찌의 착용기간도 최대 5년에서 10년, 30년(하한 10년)으로 계속 기간을 늘려왔다. 전자발찌제도 운영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투입된 예산은 약 100억원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화학적 거세의 경우, 약물치료의 특징상 본인의 동의가 있을 때 치료효과가 높아지는 데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에서는 본인 동의와 관계없이 법원의 명령 선고로 실행되도록 하고 있다. 본래 이 법안을 제안했던 의원의 법안에는 가해자의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었으나, 국회 상임위에 법률안이 상정되기 하루 전 법무부가 '동의를 요하지 않는 것'으로 내용을 변경하여 제안하였고 그대로 통과된 것이다.
현재 약물치료를 시행하는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가해자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한국의 화학적 거세 대상은 모든 성폭력 범죄자가 아니라 16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 성도착증을 가진 환자로서 현재 법무부에서는 1년에 20명 정도가 대상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첫 해에 필요한 예산은 9억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되는 13세 미만 아동성폭력 사건이 1년에 약 1천건 정도라는 점에서 '화학적 거세'와 같은 강력범죄로 처벌되지 않는 더 많은 성폭력 사건들에 대한 처벌과 예방 방법에 의문점이 남는다. 이런 감시와 강경 처벌책들이 과연 어린이 성폭력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어린이 성폭력의 실태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간, 은밀하게 이뤄지는 '어른권력'에 의한 성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