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많은 아이들 중에 건졌다...'대박'

현명한 소비 남다른 감각, 구제 옷 예찬론

등록 2011.07.06 14:01수정 2011.07.0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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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제 옷을 좋아한다. 요즘은 동네에서도 심심치 않게 구제가게들을 볼 수가 있어서 그곳들을 들르는 것이 요즘 내 일상이 되었다. 구제 가게에 들어가는 것은 꽤 묘한 기분을 가져다준다.

 

'오늘은 어떤 옷이 기다리고 있을까?'

 

유럽, 동양의 옷이 뒤섞인 그곳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혼자만의 은밀한 기분에 휩싸이게도 한다. 그래서 더 아늑하고 포근하며 정겨운 느낌이 든다.

 

구제 옷은 적당히 길이 잘 들어있다는 장점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수공예 옷들이 많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더구나 눈썰미 좋은 주인의 가게에선 참 독특한 디자인의 옷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그 가운데서 보물을 건져내듯 뭔가를 찾아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물론 무조건 다 놓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구제 가게에 들어서면 특유의 냄새가 확 풍겨져 나오는데, 그건 구제 옷을 판매하기 전 세탁 과정에서 생기는 세탁 용액의 냄새인 것 같다. 어느 구제가게를 가든 그 냄새는 똑같이 났고, 날씨가 더운 철에는 실내에 배인 더운 공기와 섞여서 더 많이 나곤 했다.

 

그런데 내가 자주 가는 가게에는 그런 냄새조차 나지 않는 곳이 하나 있다. 게다가 굉장히 아담한 공간이란 점이 마음에 쏙 들고, 강아지를 너무나 사랑하며, 아기자기한 물건을 정성스럽게 진열하는 데다, 덕스럽게 말을 받아주는 50대 아줌마가 있어서 더욱 발걸음이 자주 향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나는 무한정의 나래를 펼치며 옷더미들 속을 헤집는다. 덴마크 영화 <드레스>에서처럼 한 벌의 옷이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면서 그 옷을 가진 사람의 생활 속으로 낯선 사건들을 불쑥 던지는 으스스한 상상에 조금 등골이 오싹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미신 아닌가! 하긴 그 비슷한 상황을 보긴 했다. 그것도 새 옷에 사 모으기에 빠져있던 어느 친구를 통해서다.

 

옷을 서너 번 입고 장에다 처박아두는 애가 하나 있었는데 워낙에 싫증을 잘 내는 그 애는 시시때때로 옷을 사대기 바빴고, 그 어느 옷에도 마음을 두지 못했다. 더구나 남자를 사귀면서도 마치 그 옷들처럼 수시로 상대가 바뀌느라 주위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그 옷 사재기 버릇 때문에 첫 결혼에 실패한 그 애에게 남겨진 것은 남편이 홧김에 죄다 뜯어놓은 옷들과 카드 빚, 이혼녀라는 딱지였다. 옷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마구 뒤흔들어 놓은 느낌이어서 지금도 으스스할 뿐이다.

 

누구는 구제 옷은 남이 입다버린 옷이라며 혐오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옷을 '주워 입는다'는 표현을 써가며 흉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구제는 그만큼의 값을 주고 사는 물건일 뿐 주워오는 것이 아니다. 벼룩시장이 일반화된 유럽에는 일부러 그런 시장을 돌아다니며 독특하고 진귀한 엔틱 물품과 과거 패션을 쓸어오는 마니아들이 많다. 그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벼룩시장을 헤매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누구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트렌드 리더들인 것이다.

 

지금도 나는 어린 시절 사촌 언니에게 물려받아 입은 옷에 대해 행복한 회상을 한다. 옷은 사람과 사람이 공유하는 미지의 세계이며 무한한 미래로 뻗어있는 영토다. 새 옷은 내가 혼자서 그 옷의 추억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지극한 불편함이 있지만, 헌 옷은 이미 만들어진 누군가의 추억에 내가 함께 하며 그 옷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게 만든다.

 

"여기 진열됐던 가방 팔렸어요?"

"응, 어떤 새댁이 가격 묻더니 금방 사가더라고."

 

구제 가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런 점 역시 또 다른 매력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물건이기에 놓쳐버렸을 때 느끼는 그 아쉬움은 평생 소중히 기억되는 것이고, 그건 대량 생산의 기성품이 가지지 못하는 굉장한 덤이다.

2011.07.06 14:01ⓒ 2011 OhmyNews
#구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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