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논란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준규 검찰총장이 국회에서 가결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김 총장은 7월 4일 대검 확대간부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사퇴의 변'이라는 것을 남겼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간이 녹아날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사퇴가 지연된 점에 대해 해명했다.
"나라를 대표해서 국제회의(세계검찰청장회의)를 주재하는 위치에서 당시로써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중략) 법사위 수정 의결이 있었을 때 이미 결심을 했습니다.(중략) 국제회의장에서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간이 녹아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심사가 자못 비장하다는 걸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라틴어 법 격언을 인용하더니, "이번 사태는 '대통령령'이냐 '법무부령'이냐의 문제라기보다 핵심은 '합의의 파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합의가 깨어지면 얼마나 큰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라고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모호한 말을 남겼다.
검찰총장 '사퇴의 변'에 담긴 한국 검찰의 생리 나는 이 '사퇴의 변' 속에 한국 검찰의 생리가 여지없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논의해 볼 필요를 느낀다.
먼저 감지되는 것은 김 총장이 자의든 타의든 극심한 사퇴 압박을 받고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법사위에서 수정된 것은 지난 6월 28일이고 본회의에서 통과된 것은 6월30일이었다. 그런데 사퇴를 공식 발표한 7월4일까지 불과 4~6일 동안 그는 "간이 녹아날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한국 검찰 특유의 '조직 생리'를 엿볼 수가 있었다. 그들은 조직 보호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직'을 걸어야 한다는 신조를 비수처럼 품고 있는 집단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김준규 총장은 법정 임기를 46일 남겨 놓고 있었다. 굳이 사퇴하지 않아도 청와대에서 후임 인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계제였다. 게다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사퇴를 만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퇴를 강행(?)해야만 하는 것이 한국 검찰의 특유한 생리인 것 같다. 물론 '조직 보호를 위해서'일 터이다.
나는 한국 검찰의 조직 생리를 그가 총장에 부임하는 과정에서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듯이 원래 검찰총장에 임명된 사람은 천성관 당시 중앙지검장이었다. 그런데 천성관 후보가 국회 청문회 결과 낙마하게 되자 그가 대타로 기용됐다. 김준규 총장은 당시 대전고검장이었는데 천성관 후보보다 사법시험 1기 선배였다.
후배가 총장에 기용되자 그는 지체 없이 사표를 던지고는 25일 동안 검찰을 떠나 있었다. 검찰에서는 이런 행위를 흔히 '용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보면 이런 행위는 치졸한 관행에 불과하다. 대관절 사법시험에 먼저 붙고 나중 붙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것일까? 이런 것이야말로 속된 말로 '짬밥' 순으로 권력을 행사했던 과거 '감방의 논리' 또는 '군대' 논리 아닌가? 그리고 이제는 감방이나 군대에서도 개선돼 가는 짬밥 논리를 아직도 의기양양하게 굳게 지키고 있는 집단이 바로 한국 검찰이다.
'사태의 핵심'을 왜곡한 김준규 검찰총장김준규 총장은 사태의 핵심이 '법무부령'이냐 '대통령령'이냐에 있기보다는 "합의가 깨어진 것"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분히 진심을 의심받을 소지가 있는 언명이다. 검찰은 그동안 '법무부령'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과된 조정안은 현실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명문화하되, '모든 수사는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애초 정부 합의안인 '법무부령'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고쳤을 따름이다.
'대통령령'은 행안부와 경찰청 등의 관련기관과 합의·절충 과정을 거친 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야 하는 반면, 검찰이 줄곧 주장해온 '법무부령'은 법무부 장관이 최종 승인권자가 된다. 그런데 법무부는 거의 검사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경찰도 엄연히 수사의 주체인 만큼 수사 세부사항에는 경찰이 소속된 행안부 등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검찰은 모든 수사의 지휘권을 행사함은 물론 수사의 구체적 사항까지도 자기들 입맛대로 만들겠다는 허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준규 총장이 말한 '합의'라는 것은 행정부 주재 하에 검찰과 경찰이 이룬 것이었다. 그들은 원안대로 국회에 넘김으로써 합의를 이행한 것이 된다. 이것을 고친 것은 입법권을 가진 국회이고 또한 그것은 명백히 국회가 가진 헌법상 권한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태의 핵심은 합의가 깨어진 것에 있다"는 김 총장의 말에는 오류가 있다. 나아가 이것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가 뜬금없이 제시한 라틴어 법 격언 '팍타 순트 세르반다(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역시 전혀 이치에 맞지 않은 인용이었다. 원래 이 말은 계약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 있다. 대법원은 이 격언을 계약준수의 원칙으로 사용한 판례를 두 번 남긴 바 있다. 검찰총장의 법정 임기는 계약 중에서도 아주 무거운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법정 계약을 파기하면서 계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라틴어 격언 따위나 인용하는 모습에서 나는 한국 검사 특유의 '무개념'을 읽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