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에 입대한 배우 현빈의 모습
날아라 마린보이
그러나 해병대가 세간의 화제가 되거나 젊은이들이 해병대에 열광한 까닭이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톱스타의 입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또 젊은이들의 해병대 입대를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것으로 미화한 대통령의 예찬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해병대는 오래 전부터 일종의 '특이한 사회 현상'으로 간주되어 왔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대 교우회, 해병 전우회, 호남 향우회를 이른바 '대한민국 3대 사조직'으로 불러왔다. 세 조직은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모임이 결성돼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만큼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그 결속력을 떠받치는 계급과 서열은 호남향우회에서는 '나이'이고, 고대 마피아에서는 '학번'이고, 해병전우회에서는 '기수'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3대 사조직'은 연고주의(緣故主義)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 집단주의의 한 원형을 보여준다.
물론, 태어난 고향(지연)과 졸업한 대학(학연), 그리고 복무한 군대(군연)가 같다는 동질감만으로 세 조직을 동렬 비교할 수는 없다. 뿌리깊은 지역차별에 대한 방어본능에서 뭉친 호남향우회와 명문대 출신들이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뭉친 고대 교우회는 사뭇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해병대의 동질감은 그 중간쯤에 있다. 일반 군 생활과는 달리, 해병대에선 고된 훈련의 '아픔'과 함께, 소수 정예라는 '자부심' 또한 공유하기 때문이다.
해병대는 서울의 서측방과 서북쪽 섬들에 대한 방어 임무와 함께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상륙작전 하면 함정에 태운 병력을 적 해안에 전개시키는 것만 떠올리지만, 해병대 상륙작전에는 함정뿐만 아니라 장갑차와 항공기 등 모둔 운송수단이 다 동원된다. 따라서 해병대는 다목적 신속대응군으로서 유사시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작전 수행능력을 구비하기 위해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을 받는다.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릴수록 실전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전쟁 격언은 적진에 침투해 적을 교란하고 아군이 진격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해병대에게 제격이다. 특히 6주간의 신병 기본훈련은 '지옥훈련'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혹독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6주차에 받는 신병훈련의 마지막 관문인 '천자봉 행군'을 마치면 비로소 노란색 훈련병 명찰을 떼고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달게 된다.
지난 2005년 8월 해병대는 병(兵) 제1000기 수료생을 배출해 해병대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지난 3월 7일 입소한 이른바 '현빈 기수'는 1137기이다). 해병대전략연구소는 당시 제1000기 및 1001기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해병대 지원동기를 조사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해병대의 강인함(61%)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다음은 ▲학업주기 고려(19%) ▲외형적인 모습(14%) ▲주변의 권유(6%) 순이었다. 결국 해병대에 입대한 젊은이 4명 중 3명은 해병대의 '강인함'과 '외형적인 모습'(이미지)에 끌려서 지원한 것이다.
해병대의 '강인한 이미지'는 지난 2003년 한 시장조사기관이 국산 브랜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기획조사에서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인 삼성전자 휴대폰과 LPGA 프로골퍼 박세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거 박찬호 등과 함께 해병대가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 브랜드 중의 하나로 선정된 것에서도 엿보인다. 해병대에 대한 인기는 IMF 긴급구제금융을 수혈받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사회공익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병영체험훈련 프로그램인 '청소년 해병대캠프'에서도 확인된다.
해병대캠프는 4박5일간 해병대 출신 베테랑 교관의 지도 아래 유격훈련, 산악행군, 공동묘지 공포체험, IBS(고무보트) 수상훈련 등 실제 해병대 훈련을 방불케 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포항과 김포(해병2사단)에서 진행하는 캠프는 해마다 여름-겨울방학 때에 남녀 중고생들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데 지원자가 쇄도해 이를 다 수용할 수가 없어 사설업체에서 운영하는 유사 캠프만도 15곳에 이른다. 한 기수마다 150~300명씩, 한 해에 3~4기수를 받는 해병대캠프는 2010년까지 95기를 배출, 이미 청소년 3만여 명을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으로 포섭한 셈이다.
해병대의 인기는 '국민 모두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국민개병제(皆兵制)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호전적인 병영국가'로 분류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성은 핸디캡을 갖게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병역을 기피하려는 풍조도 있지만, 병역의무를 할 바에는 수동적으로 군대에 끌려가느니 강인한 이미지와 자부심이 강한 해병대에 자원하려는 기풍 또한 강한 것이다.
'귀신 잡는 전통'이 아닌 소통과 상호존중 문화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