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책값 다 갚던 날 부부가 만세 불렀다"

[책] 시인 김용택 부부 사랑편지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

등록 2011.07.04 16:35수정 2011.07.0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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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용택 시인 김용택과 아내 이은영이 이번에 펴낸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은 부부 사랑 이야기다.
시인 김용택시인 김용택과 아내 이은영이 이번에 펴낸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은 부부 사랑 이야기다. 이종찬

"내 청춘의 강 길에는 눈이 내리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꽃들이 피었지요. 외로움이 깊었어요. 피와 살이 마르면 책으로 피와 살을 보충했지요. 생각은 끝이 없고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더디고 긴 삶의 고난이었는지요. 그 어두운 시골 작은 골방에서 창호지 문으로 새어 든 달빛으로 시를 쓰던 날들이 생각납니다."-128쪽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이혼율 1위라는 낯 뜨거운 자리를 낯  뜨겁지 않게 당당하게 지키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부부의 자화상'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중년부부(결혼생활 20년 이상) 이혼율이 27.3%로, 4년차 아래 신혼부부(25%)를 앞질렀다. 이는 1990년 뒤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이혼 극복 솔루션'을 내건 방송 프로그램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연예인 부부 일상을 다룬 프로그램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이혼과 재혼이 크게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지금 '부부로 잘 사는 법'이 그 어느 때보다 몹시 절실하고 소중하다는 뜻 아니겠는가. 

섬진강 시인 김용택. 그는 전업주부인 아내와 올해 26년째 알콩달콩 살고 있다. 그는 지난 2008년에 39년 동안 몸을 담았던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수많은 강연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학부모와 교사,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면 늘상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 세상에 "위대하지 않은 부부는 없"기 때문이다. 시인 김용택과 아내 이은영이 이번에 펴낸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도 바로 부부 사랑 이야기다. 이 책에는 절망과 희망, 그 사이를 쉴틈 없이 오가는 우리나라 모든 부부들에게 들려주는 애틋한 연애편지가 네잎 클로버처럼 희망을 툭툭 던져주고 있다.

외상 책값 다 갚던 날 부부가 만세 불렀다

김용택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 이 책에는 절망과 희망, 그 사이를 쉴틈 없이 오가는 우리나라 모든 부부들에게 들려주는 애틋한 연애편지가 네잎 클로버처럼 희망을 툭툭 던져주고 있다.
김용택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이 책에는 절망과 희망, 그 사이를 쉴틈 없이 오가는 우리나라 모든 부부들에게 들려주는 애틋한 연애편지가 네잎 클로버처럼 희망을 툭툭 던져주고 있다. 마음산책
"이성과 논리가 발을 내리지 못하는, 참으로 알 수 없고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부부 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를 쓰고 '달나라'에 가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이 편지글들은 부부 탈출기에 다름 아니다. 억지는 아니었다. 우린 친해지고 싶었다."-'책머리' 몇 토막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아내 이은영과 주고받은 편지 83통을 엮어 펴낸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마음산책).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 김용택 시인은 부친상을 당했을 때 동생 친구 이은영을 처음 만난다. 이들은 상가에서 인사 한 마디를 나눈 사이지만 이은영이 김 시인 시골집을 다시 찾아가면서 사랑이 싹튼다.

당신이 아니면, 궁금한 당신, 깊은 밤, 삼겹살, 사는 건 바다와 같아서, 오랜만에 비, 시, 사랑을 알기에, 도화 아래 눕다, 새어 든 달빛, 이렇게 살게요, 오늘 만난 사람들,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 시가 되어 나올 말, 아들에게 밥 얻어먹기, 세상을 향한 사랑,  나를 바꿔놓은 사람, 말을 삼키는 파도, 아름답고 쓸쓸한 타락, 사람은 만들어진다 등이 그것.


김용택 시인은 "가난했던 젊은 날, 시골 작은 골방에서 창호지 문으로 새어든 달빛 아래 책을 읽고 시를 썼다"라고 말한다. 그는 "'외로움이 깊었'으며 '생각은 끝이 없고 잠은 오지 않았'던 청춘을 보냈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이룬 뿌리"라며 "결혼 뒤에도 가난함은 오래 이어졌다"라고 옛 기억을 차분하게 더듬는다.

그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살았던 탓에 지금도 빚이라면 펄쩍 뛴다는 것을 아내만은 알고 있다"라며 "1995년 무렵, 밀린 외상 책값을 다 갚던 날 부부가 끌어안고 만세를 부르던 기억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고 되짚는다. "이불보를 빨아 널면 하늘이 다 가려지는 작고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그 가난한 살림살이가 지금도 흑백필름처럼 스쳐가듯이. 

"선생님, 저랑 같이 살면 안 돼요?" vs "너랑 나랑"

"햇살이 맑던 겨울 어느 날 당신을 찾아갔지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완행버스를 타고 갔지요. '선생님, 저랑 같이 살면 안 돼요?' '너랑 나랑?' '네.' '은영아, 제정신이냐? 내가 나이가 몇인 줄 알아?' '네, 서른여덟요.' '너는?' '스물넷요.' '정신 차려라. 부모님을 생각해야지. 동생들 생각도 하고. 밤이 깊었다. 가서 어머니하고 자고 내일 가거라.' 그래도, 당신이 말은 그렇게 해도 약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131~132쪽

시인 김용택과 그 아내 이은영. 이들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 곳곳에는 그때 겪었던 지지리도 가난했던 삶과 아픈 추억이 새록새록 새겨져 있다. 시인 아내는 "세상과 우주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인 시인 남편이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주었다 말한다. 시인 아내는 이젠 서로가 "오래된" 사람인데도, 몇 달 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편지를 쓰면 그리운 마음이 새롭게 생긴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렌다.

시인과 시인 아내가 주고받은 사랑편지라고 해서 이 책에 그들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식들 이야기도 사랑편지를 통해 속속들이 그려진다. 군에 입대하는 아들 민세에 대한 애틋함, 미국에서 힘겹게 공부해 대학에 들어간 딸 민해에 대한 속마음 등이 저만치 논두렁에 예쁘게 피어난 풀꽃처럼 흔들린다. 

시인 아내는 엄마 잘못도 거침없이 꼬집는 다 큰 아들딸을 보며 "아이들이 자라면 부모도 바뀌어야 한다는 걸 실감"한다. "생각하면 목이 메는 일"이지만 엄마이니 어쩌겠는가. 여기에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어머니(시어머니)와 있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 차마 드러내놓고 하지 못할 그 서러운 이야기도 읽는 이 마음을 찡하게 울린다.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부부들에게 띄우는 화두

"사람들은 내게 가끔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시인하고 사는 게 어떠세요?' 그럼 그때 생각납니다. 아, 내가 시인하고 살고 있었지. 나는 당신이 시인이라는 걸, 당신이 예술을 한다는 걸 잊고 삽니다... 당신은 내게 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상을 잘 살아가는 거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시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공허한 외침이었다면, 나는 당신이 부끄러웠을 겁니다." -140~142쪽

시인 김용택, 이은영 부부가 함께 엮은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은 시를 쓰는 시골학교 분교 교사 남편과 그 시인을 뒷바라지하는 아내가 주고받은 마음 깊이 새긴 아름답고도 큰 사랑이다. 미국에 유학을 간 딸 뒷바라지를 위해 시인 곁을 떠나 있는 아내와 주고받은 사랑편지, 그 사랑편지는 이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부부들에게 띄우는 새로운 화두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1948년 전북 임실 진메마을에서 태어나 순창농고를 졸업했으며, 이듬해 교사시험을 거쳐 21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가 펴낸 <21인 신작시집>에 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섬진강에 대해 "나의 모든 글은 거기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고 끝이 날 것을 믿으며 내 시가 이 작은 마을에 있는 한 그루 나무이기를 원한다"라고 말한다.

2008년 8월 31일자로 교직을 정년 퇴임한 그는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모교이기도 한 임실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썼다. 그는 여러 가지 문학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자연을 우리 삶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았다. 문단에서는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그대, 거침없는 사랑> <그래서 당신>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작은 마을>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인생> 등이 있다.

장편동화로는 <옥이야 진메야>가 있으며, 성장소설 <정님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내 똥 내 밥>, 동시엮음집 <학교야, 공 차자>, 시엮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 등 수많은 책을 펴냈다. 1986년에는 '김수영문학상'을, 1997년에는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 - 시인 김용택 부부의 편지

김용택.이은영 지음,
마음산책, 2011


#시인 김용택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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