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에게 한동안 '쥐 그림' 하면 '쥐 벽서 그림'이 떠오르겠지만, 우리 옛 그림 중 떠오르는 쥐 그림은 겸재 정선의 <서과투서>(위)와 신사임당의 <초충도> 한 장면이다. 둘 다 커다란 수박을 쥐가 훔쳐 먹는 모습을 그렸다. 정황이 비슷한지라 혹자는 '신사임당의 그림을 정선이 모방했다'고 하지만 글쎄.
끔찍하게 싫어하는 쥐지만, 이 설명 읽기까지 옛 그림이나 옛 문헌 속 쥐는 혹자들의 말처럼 다산 혹은 재물 혹은 다복을 상징한다고 알고 있었던지라 이 그림은 정선이 지인에게 자자손손 번성하라는 마음을 담아 그려 선물한 것이려니, 옛 사람들에게 쥐는 요즘과 달리 다산과 재물을 상징하는 것이려니 했다.
아마도 나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저자 역시 그에 대해 '욕 먹을 짓'이라며 언급하고 있는 걸 보면. 쥐는 제법 등장한다. 대부분 그리들 설명한다. 그러니 옛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들은 그리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의 말을 빌리면 옛날 사람들에게도 쥐는 잡아 죽여야만 하는 공공의 적이었던 것이다.
'관청 창고의 쥐'를 읽노라니 이달의 '이삭 줍는 노래'란 한시가 떠오른다. '뼈 빠지게 지은 농사 세금으로 바치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 이삭이라도 주워 굶주림을 면할까. 그런데 이삭 주워 목숨 연명하는 것을 관리들이 어찌 알았는지 올해는 이삭까지 싹싹 긁어가는 통에 하루 종일 헤매고 다녀도 이삭 하나 없노라'고 이삭 줍는 아이가 말하네. 이런 내용이다.
백골에까지 세금을 매기다니 어찌 그리도 참혹한가. 한 마을에 사는 한 가족이 모두 횡액을 당하였네. 아침저녁 채찍으로 치며 엄하게 재촉하니 앞마을에선 달아나 숨고 뒷마을에선 통곡하네. 닭과 개를 다 팔아도 꾼 돈을 갚기엔 모자란다네. 사나운 아전들은 돈 내 놓으라 닦달하지만 세금 낼 돈을 어디 가서 얻는단 말인가.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도 서로 보살피지 못하고/가죽과 뼈가 들러붙어 반쯤 죽은 채로 얼어붙은 감옥에 갇혀 있다네.
-정내교의 <농가탄>
정내교의 <농가탄(農家歎)>이란 시도 있다. 백성들 돈 빼앗는데 재미 들리고 혈안이 된 관리들이 죽은 사람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시인데,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정선의 '수박 파먹는 쥐 그림'과 조업의 '관청 창고의 쥐'와 이달의 '이삭 줍는 노래(습수요)', 정내교의 '농가탄' 속 실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인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최대의 적은 부패한 관리들(정치인)이란 생각 때문인지 그림에 대한 저자의 설명, 후련하게 와 닿는 한편 이처럼 생각 분분하게 한다. 관청의 쥐님들 아시는지? 아직 여름도 채 무르익지 않았는데 공과금 다 오른다는 가을을, 태산 같은 그 공과금들 짊어지고 넘어가야만 할 올 겨울을 벌써부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사대부 화가 남계우는 별명이 '남 나비'다. 나비 그림만큼은 조선 제일이었다. 수 백 종의 나비를 채집해서 꼼꼼히 관찰하고 치밀하게 묘사했다. 나비 한 마리를 잡다 놓쳐 십리 길을 따라간 그다. 한 생물학자는 나중에 그의 그림에서 희귀한 열대종 나비까지 찾아냈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에서
그림 한편에 그 그림의 핵심 부분을 잘라낸 이미지 하나. 빼곡하게 적은 엽서 한 장 정도의 분량을 약간 웃돌 정도의 짧은 글이 이 책 그림 한 점에 대한 설명 전부다. 그런데 이처럼 명확하고 신랄한 그림 설명과 함께 당시의 상황, 그림에 얽힌 사연, 역사 상식, 풍습, 그림 그린 이에 대한 이야기 등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후련하고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장원급제해서 임금 뵈라는 기원 깃든 김홍도의 <게와 갈대>
어떤 이가 김홍도의 <게와 갈대>를 보고 말한다. "어찌 보면 낙서 같고 어찌 보면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도무지 알 수 없네"라고. 그린 사람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웹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얼핏 유치한 그림인지라 이 그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특히 많은 것 같다. 그런 분들을 위해 저자의 설명 한 부분을 더 소개하며.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게는 꽃게가 아니다. 갈대밭에 있으니 참게나 말똥게쯤 될까. 게 맛은 갈대 피는 철과 무관하다. 그럼 게가 갈대꽃을 꽉 물고 있는 그림은 무슨 뜻일까. 갈대 '로(蘆)'자는 말 전할 '려(臚)'자와 발음이 비슷하다. '려'자가 들어간 단어에 '여전(臚傳)'이 있는데, 이름이 불린 과거 급제자가 임금을 알현한다는 뜻이다. 게의 껍질은 '갑(甲)'자라서 일등과 통한다. 풀이하자면 장원급제해서 임금을 뵈라는 기원이 이 그림에 숨어 있다.
단원은 거기서 한술 더 뜬다. 그림에 써 넣기를 '바다 용왕이 있는 곳에서도 옆걸음 친다'고 했다. 이 말이 무섭다. 게걸음은 옆걸음이다. 조정에 불려가더라도 "그럽죠, 그럽죠" 하지 말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행세하란 주문이다. 게의 별명이 '횡행개사(橫行介士)'다. '옆걸음 치면서 기개 있는 선비'란 말이다. 모두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말하는 야무짐이 벼슬하는 자의 기개다. 게가 맛있는 철이 돌아온다. 관리들이여, 게살만 발라먹지 말고 게의 걸음걸이도 떠올릴지어다.-<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에서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현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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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속 쥐가 다산 상징?...천만에,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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