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 마을회관 1층.
문해인
돈 많다고 소문난 강남구에서 이렇게 큰 화재가 발생했는데 아이들의 교과서나 노인들의 의료지원 등 기본적인 것마저 지원하지 않는 태도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졌다. 식사 후 더 많은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강남구청이 내놓은 임대주택 제공을 주민들이 왜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를 물어보아 포이동 30년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포이동 266번지는 1981년 정부가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넝마주이 등을 당시 서울에서 외진 곳들에 분산수용(강제이주)하면서 당시 포이동 200-1번지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마을이다. 즉 처음부터 주민들을 포이동 266번지에 살게 한 것은 정부이며, 아무것도 없던 황량한 땅을 일구어 마을을 만든 것은 주민들인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주민들을 임대주택으로 내몰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 사인만 하면 된다며 주민들에게 자활근로대를 그만두는 각서를 쓰게 하고, 행정대집행으로 진행된 강남구 지역정리에서 포이동 200-1번지는 포이동 266번지로 바뀐 구역에서 빠지게 되었다. 즉 200-1번지에 버젓이 살고 있던 주민들이 이름만 바뀐 포이동 266번지에서는 살고 있지 않은,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유령'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불법점유자로 처리된 이들에게는 토지변상금이 따라붙게 되었다. 1990년 당시에는 30만 원만 내면 된다고 했던 토지변상금이 현재 이자까지 해서 가구당 8천만 원씩이다.
이 때문에 포이동 주민들은 통장을 만들 수도, 포이동에서 나와 월세나 전세를 얻을 수도 없다. 이것이 주민들이 임대주택 이전을 거부하는 하나의 이유이다. 임대주택으로 이전하려면 500~1000만 원의 보증금을 내야 하는데 토지변상금 명목으로 보증금이 압류되어 다시 거리로 내몰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강남구청이 제안한 임대주택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하나 반지하 주택으로 주민들은 언젠가 폐쇄될 공간을 임대주택으로 제공한다는 정부의 언론플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임대주택 제안은 화재가 나기 이전까지 서울시청과 강남구청이 마을을 방문하고 주민들의 요구사항이던 강제이주 인정, 토지변상금 철회, 점유권 및 주거권 보장에 대해 조사를 강구하고 있던 것을 뒤엎는 결정이다. 2003년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를 결성한 이후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 대표들과 직접 만나 사태해결을 약속하고 2009년 주민들이 주민등록에 등재되며 포이동 문제가 해결되나 싶었더니 이번 화재 이후로는 임대주택을 제공한다며 태도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포이동 266 주민들이 임대주택 이전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 포이동 266번지가 그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삶터이자 30년을 이곳에서 함께 해 온 이웃들이 있는 삶터이기 때문이다. 포이동 266번지는 마을이 생긴 이래로 주민들의 80% 이상이 판자촌 내부에 있는 고물상에서 생계를 이어온 곳이다. 그래서 임대주택 이전은 그들의 일터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주민들이 임대주택으로 뿔뿔이 흩어질 경우 지금까지 포이동 주민들을 버티게 해 줬던 공동체의 끈이 끊어지게 된다. 포이동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사람연대의 행동하는 의사회, 포이동 인연 공부방 등이 함께하고 있다. 노인 인구가 30%에 이르고 미성년자의 40%가 조손가정이거나 한부모가정인 포이동 주민들의 상황을 생각할 때, 포이동 공동체가 해체될 경우에 받을 타격은 단순히 집을 잃는 것의 문제 이상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포이동 266번지의 문제가 단지 임대주택 이전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또한 이번 화재에만 초점을 둘 일도 아닌 30년의 긴 이야기가 있는 문제인 것임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포이동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던 학교에서 본 교사모집 전단 이야기를 꺼냈다.
주민들이 왜 그곳에 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해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