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겨땀은 이성에 대한 환상을 분쇄시켜준 액체였다
김지현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겨드랑이 땀(시쳇말로 겨땀) 때문이었다. 그 겨땀은 이마에 흐르는 땀보다 더 농도가 짙을 것 같았고, 무엇인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렇게 느끼는 것은 분명 나만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 반 전체를 휩쓴 화두는 '그녀의 겨땀을 보았는가, 젠장!'이었다.
당시는 여름 생활의 신선한 동반자인 데오드란트(냄새제거제)도 없던 시절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겨땀은 일생 처음 본 '불편한 액체'였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불편한 액체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고등학교 진학 이후 깨달았다는 것이다.
땀.
사실 인간은 모두 땀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인가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액체는 땀이 많은 사람에게는 병적인 콤플렉스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최승섭(29)씨는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명쾌하게 "육수"라고 답했다. 그뿐 아니다. 김대영(21)씨는 "공공장소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해 보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 시선은 솔직히 불쾌하다. 바로 내가 땀을 엄청나게 많이 흘리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담배로 망친 건강, 인삼으로 보충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이게 웬 걸. 몸에 열이 많은 나는 인삼을 먹으면 얼굴에 열꽃이 만개하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이 정도니 평소에 조금만 더워져도 땀을 뻘뻘 흘리기 일쑤.
엉덩이 먹은 땀... 나를 엉덩이로만 인식하지 마이렇게 나 같은 사람들은 '불쌍하다', '안 돼 보인다'는 눈초리를 받는다(동정할 거라면 차라리 부채질을 해주던지). 문제는 저런 말을 눈빛이 아니라 말로 직접 들을 때다. 그럴 때는 머리가 아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