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녜제주, 사계리 김유순(94). Digital Pigment print
김흥구
'좀녜'란 해녀를 뜻하는 제주도의 옛 방언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녀'라는 말 대신 굳이 좀녜를 전시 제목으로 택한 것은, 해녀가 일본의 식민화 작업으로 만들어진 명칭이라는 견해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관광 상품화된 제주의 상징이나 호기심의 대상으로서의 해녀가 아니라, 주어진 삶을 지켜가기 위해 생의 막바지까지 힘든 물질을 지속해 나가는 이 세상 '어망(어머니, 제주 방언)'들을 왜곡 없이 사진에 담고 싶었던 사진가의
마음이 제목과 연동된 것이다.
사진 '좀녜'는 2002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진학과 학생이었던 김흥구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배를 타고 제주도로 건너가 주말을 꼬박 해녀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녀들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오래 전부터 해녀에 대한 자료와 TV 방송에 끌렸습니다. 왜 그런지 자문해 보았는데, 자주 편찮으셨던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는 동안 무의식중에 강한 어머니를 동경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카메라를 들고 곁에 서 있기만 해도 물을 뿌리며 손사래를 치는 해녀들의 배타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여전히 대학 재학생이던 김흥구에게 한 뭉치의 흑백사진들이 결과물로 들려졌다. 그 사진들이 바로 2003 제1회 GEO-OLYMPUS PHOTOGRAPHY AWARDS 대상 수상작 '좀녜'이며, 그는 당시 수십 년 경력의 기성 사진가들을 제치고 대상의 영예를 안아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때의 수상이 스무 살 중반의 김흥구를 당당히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불리게 했지만, 그것은 '좀녜'의 완결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물과 볕에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로 젊은 날의 사진 앞에 선 비양동의 할망 해녀부터, 비 오는 날에도 테왁을 들고 바다로 나가는 서천진동의 해녀 무리, 물안경을 쓰고 심연의 바다에서 해산물을 건져 올리는 온평리의 해녀에 이르기까지, 김흥구는 이후로도 좀녜들에 관한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바다 속 삶까지 따라 들어가고자 스킨스쿠버다이빙을 배웠고, 역사적 기록의 큰 맥락에서 멀리 해외로 '물질 나간' 원정 해녀들을 찾아 일본을 드나들었다. 또 베갯잇 터진 것까지 눈치챌 정도로 자식보다 더 자주 곁을 지켰던 한 우도 해녀의 수양아들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