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서 시대정신이 달라졌고, 교육 내용도 환경도 시나브로 변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우선 밝혀둘 게 있다. 필자는 교직 경력이 14년차에 접어드는 40대 초반의 지방 고등학교 교사이고,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의 아빠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 초임 시절 무던히도 매를 들어 당시 제자들에게 '미친개'라는 별명까지 얻어들어야 했던, 이른바 체벌을 밥 먹듯이 한 교사였다.
이렇게 말하기 좀 뭣하긴 하지만, 교과서보다 매를 먼저 챙겨 들었던 그때가 솔직히 중년에 접어든 지금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었다. 아이들마다의 이름과 성격, 가정환경과 성적 추이 등을 줄줄 꿰고 있었고, 그들과 별반 나이 차가 나지 않는 또래라는 생각에 수시로 상담할 만큼 세심하고 자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기에 스스로 체벌을 교육에 대한 열정이자 아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확신했고, 외려 매를 드는 이유를 몰라주는 아이들이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맞는 아이보다 때리는 선생님의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아이들이 교사의 마음을 이해해 줄 때가 오리라 믿고 또 믿었다.
그런데 어느새 시대정신이 달라졌고, 교육 내용도 환경도 시나브로 변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달라졌다. 굳이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교육방식에 대한 교사들의 획일적이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아닐까 자성해보게 된다. 변화를 외면한 채 교사의 옛 방식대로의 열정은 요즘 아이들에게 자칫 '사랑'이 아닌 '폭력'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생긴 일엊그제 겪은 일이다. 사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기에 딱히 새로울 것도 없고 크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교사로서 십여 년 전과 지금의 내 '반응'을 스스로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여서 이곳에 짤막하게 소개한다. 독자가 교사라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학부모의 입장이라면 지금의 학교 현실을 짐작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느 때처럼 급식소 내에서 생활지도를 하고 있었다. 교사들끼리 연중 순번을 정해 근무하는데, 점심시간 동안 급식소 내를 순회하며 새치기를 예방하고, 편식하지 않도록 식습관 지도를 하며,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잔반통 관리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의 올바른 생활습관을 배양한다는 차원에서 어쩌면 학습지도 못지않게 중요한 업무다.
요즘 아이들의 그릇된 편식습관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급식지도를 하다 보면 그로 인해 화병이 다 날 지경이다. 김치나 나물은 손도 안 대고, 생선요리는 젓가락 한 번 대지 않은 상태에서 고스란히 잔반통에 버려지기 일쑤다. 불고기나 돈가스라도 나올라치면 듬뿍 받아다가 아예 밥을 대신해 먹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잔반통 없는 날'을 운영하는데, 그날이 되면 단속을 피해 식탁 아래에 몰래 잔반을 버려두고 가는 얌체 같은 아이들도 많다. 올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교육청 차원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채식의 날' 때는 아예 급식소로 오지 않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어릴 적부터 철저히 육식과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경우다.
학교에서는 교내 방송과 수업 시간을 통해 온갖 교육 자료를 동원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고, 편식 습관이 해롭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런 그들에게 점심시간 동안 잠깐 설득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그들과 같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며 묵묵히 '모범'을 보여주는 게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날도 잔반통 앞에 서 있었다. 여느 때처럼 왜 밥을 남겼냐고, 왜 나물은 손도 대지 않았냐고 조심스럽게 타일렀고, 아이들 역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다음엔 다 먹겠다는 '빈말'을 건네며 잔반통에 식판을 털었다. 기실 내일도 모레도 이곳 잔반통 앞에서 똑같은 대화를 나눌 아이들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 '관계' 끊어지면 어떤 교육행위도 무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