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씨가 <신문과 방송>에 인기리에 연재하던 '워싱턴으로부터의 편지'
신문과 방송
"한국 언론의 문제, 다 알면서 말 안 하는 게 문제"한국의 유력지들이 앞다퉈 경쟁을 벌여온 '1등 신문' 즉, '고급지'에 대해서도 그는 소견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한국신문은 대중지와 고급지를 동시에 추구한다. 그래서인지 아이템이나 취재영역이 너무 광범위하다. 다른 신문을 의식하기보단 철저하게 독자를 중시하고 백화점식 지면제작을 벗어나 자신 없는 취재영역은 과감하게 포기하면서 전문성을 추구해야만 말 그대로 고급지 전략도 그 힘을 얻게 될 것"이라며 고급지의 지름길은 전문화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한편 그는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자였고,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그의 출신(평양 태생)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현역 시절 미국에서 남북한 관련 소식을 주로 취재·보도해왔던 그는 RFA을 떠나기 직전인 2007년 9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RFA 한국어 방송을 맡은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습니다.
"내 고향이 평양이다. 북한은 언론 자유가 없는 곳이므로 북한 관련 뉴스와 정보를 대리 방송하는 곳이 RFA다. 이 방송은 남에게 맡기면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창설 국장을 자청했다. 이건 내게 직업이 아니라 미션(mission, 사명)이라고 생각했다."북한인권 문제나 이와 관련한 한국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그는 아쉬움을 갖고 잇었습니다. 그는 "(북한)인권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인권이라는 것은 보편타당한 것이지 국가나 이념 문제가 아니다"고 전제하고는 "한국 언론들은 여성 인신매매, 기아 등 북한 인권의 참혹상을 잘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보도하면 외국 언론은 금방 보도하는데 한국 언론은 조용하다. '다 아는 것 아니냐'는 식이어서 참 안타깝다"며 한국 언론의 소극적인 보도태도에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한편 그의 부음기사는 국내 언론 가운데 유독 <중앙일보>에만 실렸는데 거기엔 나름의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1995년말 퇴임을 앞두고 2년간 안식년을 얻은 그는 당시 미국 언론계 소식 등을 연재해 오던 <신문과 방송> 지면을 통해 "한국 언론사 가운데 1년간 나를 옴브즈맨으로 고용할 언론사가 없느냐"고 공개 제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이에 화답하면서 이 인연으로 그는 1996년 2월부터 1년가량 <중앙일보>에서 '전문위원'이라는 직함으로 근무했습니다. 이번 부음기사에서 <중앙일보>가 그를 '전 중앙일보 전문위원'이라고 소개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그가 <중앙일보>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중앙일보>가 <워싱턴포스트>와 평소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던 데다, 안씨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경기고 선후배 사이였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습니다).
<중앙일보> 전문위원으로 부임한 직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했던 그는 1년 임기를 마치고 1997년 초 미국으로 되돌아가기 직전 이 매체와 또 다시 인터뷰를 했습니다. 1년간 한국에서 보낸 그의 소감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우선 그는 "한국 언론의 문제에 대해 본인들이 다 알면서 굳이 손님인 내 입을 통해서 알려고 하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몰라서 얘기 안 하는 게 아니라 다 알면서도 얘기하지 않는다"며 한국 언론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발언하고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언론자유를 위해 언론노조만 나설 뿐 사주들은 수수방관해온 한국의 언론 현실에 대해 의아해 하면서 사주가 언론사의 주인인 만큼 언론자유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밖에도 그는 공보처의 존재에 대해 "상당히 수치스러운 사실"이라며 "빠른 시일 내 공보처를 없애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