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에서 주민을 두렵게 여기고 귀하게 섬기며 혼신의 노력으로 부평의 새로운 아침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부평구청
2010년 봄. 이 초심에 동의한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선거운동을 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부평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나를 선택했다. 한나라당 중앙정부 집권 중에 8년간 인천 부평 지방정부를 집권했던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민주당 여성후보를, 큰 표차로 확실하게 선택한 주민들의 기대와 희망은 내게 감동과 새로운 힘을 주었다.
그래서 취임사에서 주민을 두렵게 여기고 귀하게 섬기며 혼신의 노력으로 부평의 새로운 아침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고, 몇몇 잘난 사람들이 중심 된 "너희들의 지방자치"가 아니라 모든 주민들이 함께하는 "우리들의 지방자치"를 하자고 부탁했다. 또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는 랄프 에머슨의 시처럼, 이 지역공동체 부평을 내가 맡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 생각하며 훗날 성공했던 구청장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고 취임사를 마무리했다.
그랜드슬럼 달성? 텅 빈 곳간 보며 한숨만 났다그런데 성공하는 구청장되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재정문제다. 광역시 자치구 재정이 어려운 것은 일반적이지만 부평의 경우는 상태가 심각했다. 첫 추경을 편성할 때 심각한 재정난을 확인하면서 깜짝 놀랐다.
선거 당시 인천시에 수조 원의 빚이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부평구 재정난은 은폐되어 있었고 수백억짜리 각종 시설을 지었거나 짓는 중이어서 누구도 겉보기에 부자구청 같았다. 그런데 실제는 부채가 수백억이었고, 예비비는 쥐꼬리만큼 남아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인 등에게 지급되는 사회복지비는 예산의 50% 이상이어서 사업비는 짓던 건물도 중단해야 할 만큼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성남시장은 취임하자마자 모라토리움을 선언했지만 나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우선 기자들에게는 간담회를,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열어 열악한 재정상태를 공개했다. 어느 한나라당 정치인은 구청장이 '깜짝쇼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해하고 함께 걱정했다.
재정극복 토론회도 열어 전문가의 진단과 대안을 들었고 그 자리에서 재정극복 범시민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재정자립도 25% 안팎의 수준에서 인천시에 의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장에게 찾아가서 돈 10억을 달라고 사정한 일이 한두 번 아니다. 시장뿐이랴, 부시장, 기획관리실장에게도 몇 번씩 사정하고 구걸(?)한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수천억, 예결특위위원할 때는 수십조 원을 다루며 집행부에 큰소리쳤는데 이젠 10억 원 얻으려 사방팔방 쫓아다닌다. 단 1, 2억 원도 죽는 소리하며 얻어낸다.
인구는 많고 면적은 좁은 구도심에서 돈을 벌 방도는 없고 돈 쓸 거리만 태산이다. 남들은 공단이 있고 한국GM 자동차공장도 있으니 세금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공단의 큰 공장들은 서울에 본사가 있어 그리로 세금내고 자동차공장은 대부분의 세금을 인천시에 낸다. 인구 57만 인천의 가장 큰 도시로 취득세도 다른 구에 비해 가장 많이 걷지만, 그 세금은 고스란히 시에 주고 되돌려 받을 때는 얼마 안 되는 징수교부금과 재원조정교부금이다.
거기에다 중앙정부에서 2006년 이후 사회복지사업을 분권하면서 국비지원율을 줄이고 중앙의 복지사업을 계속 확대하여 지방정부의 복지예산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 우리구는 전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도시여서 그 사회복지비 부담이 구재정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형편이다. 자치구 예산의 56%가 사회복지비라는 기형적인 재정구조는 인천은 물론 전국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런데 갑자기 인천시조차 시재정이 어렵다며 구에 내려보내야 할 교부금 170여억 원을 삭감해버렸다. 2010년도 연말에 취해진 이 조치에 하급기관인 구는 비명도 못 지르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형편이니 2011년도 예산은 구청장 공약에 의한 새로운 사업은커녕 1000여 명 공무원 4개월치 예산마저 세우지 못한 극심한 상황이 되었다. 도대체 재정이 이지경이 될 정도로 지난 시기 구청은 뭐했을까 싶어 세세히 조사를 했더니, 지난 2, 3년간 수십, 수백억 시설들을 대책도 없이, 겁도 없이 건설했다.
사회복지비 증가 부담에도 수천억 원의 토건사업을 하는 이유는 선거를 염두에 둔 구청장, 부구청장, 구의원들의 선심성, 전시적 사업 필요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단 몇 년 뒤의 재정상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방채와 각종 기금 등 끌어쓸 수 있는 모든 돈을 다 퍼부어 썼다.
당시 그 일을 저지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완전히 빈 곳간, 아니 바닥이 무너져버린 빈 곳간을 넘겨받아 어찌 채워 써야 할지, 정말로 아침에 일어나면 그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궁상을 떨 정도로 모든 사업을 축소하고 정비했다. 매년 하는 동단위 축제도 없애고 수억원을 썼던 풍물대축제는 반으로 예산절감하고 다른 축제들과 합쳐서 치르게 했다. 노인 또는 보육단체들이 다른 구와 비교해 어디는 수당 얼마를 더 준다는 데 홍 청장은 왜 안 주느냐 그럴 땐 미안하고 속상했다. 나라고 왜 인심쓰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게 설득하고 아끼며 사는데 올해 3월 20일 즈음해서 정부의 취득세 50% 감면 발표에 또 한번 날벼락을 맞는 듯했다. 인천시 취득세 세입이 반으로 준다면 우리 구 경우, 시로부터 150여억 원을 못 받게 된다. 나비효과라고 하든가. 중앙에서 날갯짓 한번 잘못하면 맨 밑에 있는 기초자치단체는 짓뭉개진다. 중앙정부에서의 지방자치 인식 및 관심 부족에서 이런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므로 즉각 다른 구들과 기자회견은 물론 행안부와 보건복지부에 건의문을 공식으로 전했다.
돈 없어도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