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에 눈꽃처럼 피어있는 밤꽃. 향기가 독특하다.
최오균
'알 듯 말 듯한' 이 향기의 진원지는 어디일까꼭 작년 이맘때의 일이었습니다. 6월 중순, 나는 아예 이삿짐을 싸들고 서울에서 섬진강으로 이사를 오기에 이르렀습니다. 남원에서 19번 도로를 따라 밤재를 넘고 구례로 넘어오자 무어라 형언할 수없는 그윽한 향기가 코끝에 스며들어왔습니다.
구례읍을 지나 섬진강변으로 접어들자 그 향기는 더욱 진해졌습니다. 그것은 코끝만이 아니라 온몸을 덮쳐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향기일까 궁금해 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니 나지막한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마을에는 밤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습니다.
섬진강변에는 매화꽃과 벚꽃만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뇌쇄스런 햇볕이 비치는 유월은 분명 밤꽃의 계절이었습니다. 울창한 벚나무 녹음이 터널처럼 우거진 조붓한 19번 도로와 섬진강 둔치 사이, 그리고 섬진강을 가운데 끼고 지리산자락과 백운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따끈따끈한 햇살을 받아 설화(雪花)처럼 희고 고운 연두색 밤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었습니다. 송이송이 늘어선 밤꽃을 보는 순간 그 알 듯 말 듯한 독특한 향기의 진원지를 확연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리에 털 나고 그렇게 많은 밤꽃을 구경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모내기가 한창인 들판에는 착해빠진 마을 사람들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고, 눈 큰 소들의 우렁차고 긴 울음소리가 은비늘 같은 섬진강의 잔잔한 물결을 뒤채며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아빠,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있었어?""그럼 있고 말고. 그래서 금수강산이 아니더냐?""아하, 그렇구나…!"인도며, 프랑스며, 중국이며 여기저기 아름다운 지구촌을 다녀온 바 있는 경이가 섬진강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연신 탄성을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을 끼고, 양변에 이토록 은은하고 포근하게 골골이 정이 드는 아름다운 산자락을 지구촌 어디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란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