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전설, 다시 길을 나서다2005년 11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5년간 대한민국 10바퀴 2만 5000km를 걸은 남상범 선생이 다시 우리국토를 걷기 위해 배낭을 꾸렸다.
남상범 선생 제공
자신을 내려놓고 세상과 소통하다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생이 나눠주는 명함이 있다. 그는 이를 '백수명함'이라고 부른다. 백수명함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홍보대사'라고 적혀 있다. 나홀로 국토 맨 가장자리를 걸으며 틈틈이 서울대 의대 발전기금을 모았다.
길에서 만난 '정체 모를 노인'에게 누가 기금을 선뜻 내놓을까 싶지만, 매달 월급에서 몇만 원씩을 떼 송금하는 아가씨부터 수억 원을 조건 없이 쾌척한 익명의 기부자도 만났다. 길에서 한 땀 한 땀 길어올린 성금은 서울의대 발전후원회에서 직접 관리한다.
홍보대사에 걸맞게 선생은 서울대병원의 권위는 높이되 문턱은 낮췄다. 길에서 만난 병마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서울대병원의 분야별 최고 선임의사를 일일이 주선했다. 선생의 도움으로 서울대병원 문턱을 넘은 환자가 전국에서 1000여 명을 헤아린다.
그럼 선생은 도보여행을 감행하기 전, 무슨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았을까. 이 물음에는 김삿갓에 빗댄 선문답 같은 대답만 되뇐다.
"모름지기 거지의 과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게 이 바닥의 불문율이야."그저 자신은 산하를 주유하는 나그네이며 다섯 아들을 둔 이 땅의 평범한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로만 기억되고 싶다고도 했다. 자신의 과거를 밝히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거의 이력이 자칫 권력이나 교만으로 비칠까를 경계해서다.
"내가 서울 토박이지만, 서울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사람들 눈빛이 달라지는 게 보여. 때론 과거가 그 사람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도 해. 편견 그거 정말 무서운 거야."과거를 잊고 스스로를 내려놓았기에, 심심산골의 노인부터 도심의 초등학생까지, 연령성별의 경계를 허물고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과거를 버리니 세상을 얻더라"는 선생의 전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또 자신의 걷기는 '민족 내면을 꿰뚫는 작업'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저 풍광을 탐닉하며 소일 삼아 걷는 여행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 사이에 가로놓인 불신의 벽을 허무는 소명의식이 그의 발걸음에 깔려 있다.
"5년간 스쳐 간 사람까지 합하면 길에서 족히 1000만 명은 만났을 거야." 사람 사이에 길이 있다... 그 길을 걷고 싶다거침없고 넉살 좋은 화술에 특유의 친화력으로 길에서 사귄 남녀노소 '친구'만 수천 명에 이른다.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들이 모여 인터넷에 팬클럽카페(
http://cafe.daum.net/mi5267)도 만들었다. 한결같이 길에서 조우해 그의 진솔함을 느낀 눈 맑은 사람들이다.
5년간 2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여행경비도 이런 '길바닥 친구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가능했다. 이번 내륙 여정에 소요되는 경비도 임병선씨라는 일면의 팬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서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임씨 역시 두어 차례 국토순례에 도전했던 아마추어 도보여행가다. 우연히 선생이 묵었던 전남의 어느 숙소에 들렀다가 주인장으로부터 선생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전화통화를 한 뒤 조건 없이 후원금을 대고 있다.
솔직히 선생 자신도 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감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술회한다. "무지렁이 노인네가 불쌍해 그런 거 아니겠어"라며 계면쩍게 웃지만, 실상은 선생의 신념과 순수함에 감화됐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이번 내륙 도보를 마치면 5년간의 도보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기회가 닿으면 선영이 잠든 경기도 선산에 개인박물관을 지어 자신의 기록물들을 전시해 국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포부도 품고 있다.
시인 정현종은 '사람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했다. 남 선생은 '사람 사이에 길이 있고 그 길을 걷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는 실제 그 길을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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