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와 남편의 꿈남편은 한때, 빼어난 기타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지요. 중학교 시절부터 배우고 익힌 통기타 연주 솜씨가 매우 뛰어나답니다. 오늘 저는 남편 자랑하는 팔불출이 되는 날이랍니다. 너그럽게 봐주세요.^^
손현희
"네? 뭐라고요? 저희가 그만둬야 한다고요?""미안하네. 자네들 그동안 고생하고 애써준 건 고마운데, 장사가 이리 안 되니 어쩌겠어. 심야영업을 못하니까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어. 정말 미안하네.""아, 할 수 없지요. 네 알겠습니다. 내일 낮에 악기 뺄게요.""그놈의 전쟁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남의 나라 전쟁 때문에 왜 우리까지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원…. 미안하이. 다음에 조금 풀리면 내 꼭 자네들 다시 부를 테니까 그렇게 알고. 그리고 자네들만큼 음악 잘 하는 사람들도 없어. 그만두더라도 연주는 어디에서라도 꼭 하고, 알았지?"'걸프 전쟁'이 앗아간 꿈한없이 맥이 빠지고 어깨가 축 늘어진 다섯 청년들이 힘없이 밤거리 '스탠드바' 문을 나섭니다. 그들이 어깨에 메고 있는 기타도 사정을 아는지 걸을 때마다 터덜터덜 함께 풀이 죽어 흔들리고 있네요. 벌써 한솥밥을 먹으면서 함께 자고, 자다가 일어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타나 키보드(전자오르간), 드럼 채를 손에 쥐고 온종일 쉴 새 없이 연습에 또 연습을 하고 살아온 지가 어느덧 꼬박 두 해가 지났답니다.
때론 서로 리듬이 틀렸네, 박자가 안 맞네 하면서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면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연습하다가 지치면 잠들고 했지요. 악기가 낡거나 좀 더 좋은 것으로 마련하기 위해 멤버들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잠깐씩 아르바이트도 했지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악기를 새로 장만하고 또 모여서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꼬박 두 해 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낸 뒤, 그야말로 '음악으로는 그 누구한테도 뒤지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필드에 나온 지 고작 두 달이 지난 때였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그렇게 애쓰고 힘겹게 구한 일자리를 그만 통째로 잃어버리게 생겼답니다. 다름 아닌, 이때가 바로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걸프 전쟁' 때였답니다. 그때만 해도 음악하는 사람들이 그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은 나이트클럽이나 당시에 한창 생겨났던 스탠드바 같은 밤거리 업소였답니다. 예전에는 제아무리 음악깨나 한다는 사람들도 무대에 설 기회가 잘 없었지요. 요즘은 노래 좀 웬만큼 한다 싶으면, 그 꿈을 위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음반을 내고 '가수' 대열에 쉽게 들어서기도 하더군요. 그다지 음악성이 없어도 말이지요.
그때만 해도, 음악하는 사람들은 참말로 가난하고 힘들었지요. 어느 때이든지 예술하는 이들이 배고프지 않은 때가 있었겠나 마는 음악하는 이들이 더 힘들었지 싶어요. 이들도 그랬답니다. 마땅히 연습할 장소가 없어서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의 시골집 황초굴(담배 건조실)에서 했답니다. 전기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푹푹찌는 더위와 겨울이면, 살을 에는 추위도 아랑곳 않고 그렇게 연습을 했답니다.
위 이야기는 사실 제 남편이 겪은 일이랍니다. 이거 남편 자랑하는 팔불출이 된 듯해서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진짜 음악성 하나는 뛰어난 사람이랍니다. 결혼 전에만 해도 노래를 참 맛깔스럽게 잘 부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악기를 그렇게 잘 다루는 줄은 몰랐답니다. 통기타, 일렉기타, 키보드, 드럼, 트롬본까지 웬만한 악기는 거의 다룰 줄 아는데 무척 놀랐지요. 그것도 그저 '어, 좀 하네!' 정도가 아니라 악기마다 수준급이랍니다. 나뿐 아니라 음악을 하는 이들도 그렇게 인정할 정도니까요.
중학교 시절, 통기타 소리에 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