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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귀한 것 경험하게 해준 공공근로 6개월

등록 2011.06.09 16:36수정 2011.06.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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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인턴을 도중에 그만두고 놀면서 공부를 할까, 돈을 벌면서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시에서 실시하는 공공근로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부서에서 간단한 업무만 하달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기개발에 투자하는 시간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9월 4분기 공공근로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지원 후 며칠 뒤 공공근로 관련하여 핸드폰으로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시청 전산실에서 통성명과 함께 다음 주 월요일에 마을 주민센터로 나가면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민센터요? 시청에서 하는 거 아니에요?"

 

조금은 당황한 나머지 직원에게 다시금 확인하는 질문을 던졌고, 직원은 주민센터에 가면 업무를 줄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 주민센터로의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습니다. '첫날에는 무슨 일을 시킬까' 보다는 '내가 공부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민센터 문을 열고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신 직원분께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공공근로 신청했는데 시청에서 이 곳으로 가라고 하더라구요."

"아. OOO선생님 되시나요??"

"네? 선생님이요? 이름은 맞는데 선생님은 아닌데요, 공공근로학생이에요."

"이번에 공공근로를 정보화 교실 선생님으로 신청을 했거든요."

 

당황스러웠습니다. 정보화 교실이란 용어도 생소했고, 선생님이라니. 첫 날부터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담당 직원분과 인사를 하고 해당 업무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를 들었습니다. 방문하는 분들은 주로 40~60대까지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기성세대분들 이라고 하시며, 간단하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정도만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간단한 교육이라고 하지만 가르친다는 것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과나 결과가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많이 부담스러우시면, 일주일만 해보시고 다른 업무로 변경시킬 수 있으면 그렇게 해드릴께요."

 

직원의 배려로 큰 부담은 조금 덜었다는 생각에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교실은 먼지가 가득했습니다. 컴퓨터들은 정상 가동되는 것이 절반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컴퓨터 설치를 위해서 관련 전산업체에 전화를 해서 OS를 다시 설치하고, 잠깐이지만 창문과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간단한 청소까지 했습니다. 처음에는 찾아오시는 분들보다는 지저분한게 너무 싫어서 청소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 한분이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누구세요? 새로 오신 선생님이신가?

"네~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늘 부터 정보화 교실 강사로..."

"아~ 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할머님은 마치 항상 그러셨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컴퓨터에 앉아서 메일을 확인하셨습니다. 그 분위기는 정보화 교실이라기보다는 컴퓨터실의 분위기와 흡사했습니다.

 

"할머니 뭐 배우고 싶으신거 있으세요? 제가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엑셀이나 워드나 인터넷 하시는거나 간단한 건 가르쳐 드릴 수 있어요."

"네?"

 

할머니께서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궁금한 저는 옆자리에 앉아서 할머니에게 그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할머니는 제가 오기 전 정보화 교실의 현황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1년 전 만해도 정보화 교실은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매우 성실한 선생님께서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적극적이고 친절하게 컴퓨터에 대해서 가르쳐드리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신체장애를 가진 장애인이셨기 때문에 많은 시간 함께하지는 못했고 반년 만에 다른분으로 바뀌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열정적인 선생님 덕택에 매 시간마다 교실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교실을 이용했지만, 새롭게 바뀐 선생님이 오신 뒤에는 하나둘씩 다른 주민 센터로 옮기셨다고 했습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은 자기 자리에서 게임만 하시면서 교육을 받으러 오시는 어르신들에게 자신은 컴퓨터 못 가르치니깐 앞으로 오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교육에 대한 열의가 없고, 건방져 보이셨는지 그 때부터 실망하신 분들은 안 나오기 시작했고, 이 할머니와 몇 분을 제외하고는 몇 개월 동안 찾아오시는 분이 없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도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아서 간단한 인사만 했던 할머님이셨지만, 제가 그렇게 물어보시니깐 깜짝 놀랐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할머니, 제가 부족하긴 하지만요, 최대한 가르쳐 드릴께요"

 

이런 말씀을 드린 뒤 일주일 뒤. 찾아오시는 분들이 한분씩 늘어났고, 어느새 교실 가득 채운 어르신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이 들어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모두 같이 하시는 말씀이 첫날에 만난 할머니가 젊은 선생님이 오셔서 열심히 가르쳐주신다고 이야기를 들었다고 오셨다는 분들이셨습니다.

 

"아. 그러세요?? 네 제가 컴퓨터를 전공하지는..."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제 전공이 컴퓨터가 아니라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제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지만, 찾아오시는 분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명쾌하게 대답해 드릴 수 없다는 뜻으로 하는 제 작은 배려였습니다.

 

"포토샵 배우고 싶으세요? 아 제가 포토샵은 못하는데... 근데 배워서 알려드릴 테니깐 다음주에 연락 드릴께요."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는 젊은 주부들도 있었습니다. 육아를 하면서 포토샵을 배우고 싶은 한 분을 위해서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포토샵도 공부하면서 오히려 저에게 또 다른 교육의 기회를 제공 받게 되었습니다.

 

10월 한 달 동안에는 해당 정보화 교실을 본부삼아 진행되는 인구주택 총조사 때문에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육의 규모를 축소하고, 11월로 미루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할아버지께서 교실에 찾아오셔서 컴퓨터를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자녀분들은 다른 지역에 사시고, 홀로 이곳에 경비원으로 근무하시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며 평소에 컴퓨터를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며, 친절하게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 마음을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침 월요일 오전에 컴퓨터 초급반 수업이 있어서 그때 나오시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초급반은 9월 중순부터 진행되었기 때문에 커리큘럼 자체가 어느 정도 지났지만, 기본적인 컴퓨터 경험이 있으셨다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중간부터 함께 가도 될 것같이 판단하고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처음 오신 날 교육은 윈도우에서 폴더를 만들고, 이름을 변경하고, 복사하는 것을 교육했습니다. 강의는 별다른 것이 없지만, 초급 수업이기 때문에 반복, 또 반복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교육방식에 익숙해서 잘 따라오셨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많이 복잡하셨는지 갈피를 못 잡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차근차근 하시면 되요. 적어 놓으신 거 천천히 보시면서 하세요"

"이거 집에서는 많이 해봤는데, 여기서는 잘 안되네"

 

할아버지께서는 평소에 알던 거라고 하시면서 능숙하게 하시는 것 같았지만, 보고 있는 저로써는 탐탁치 않았습니다. 수업이 마무리 되고 할아버지에게 오늘 배우신거 꼭 집에서 복습하시고 오라고 말씀드리고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어제 배웠던 부분은 커녕 전 날에 배우신 것들을 모두가 잊어버리신 듯 헤매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갑갑해서 할아버지께 언성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건방진 행동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울컥하는 마음에 아쉬운 마음을 토로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교실에 분위기는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이르렀고, 양해를 구하고 교육을 마무리 했습니다.

 

혼자 교실에 남아서 방금 전 행동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부모님 같은 오히려 부모님보다 더 연로하신 할아버지이신데. 대화가 통하지 않는 다는 것 때문에 그런 행동을 보인 것에 너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눈높이를 맞춰서 교육을 해야 하는데 욕심과 의욕으로만 하다 보니 이뤄진 과오라고 생각하며,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은 그때 당시 저희 아버님도 아파트 경비로 근무 중이셨습니다. 요리사로 평생을 사셨지만 무릎이 좋지 않아 수술을 하신 뒤에는 줄 곳 집에서 지내시다가 다시 회복 차 시작하신 일이 경비원이셨습니다. 오늘 일을 생각하면서 힘들게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같이 떠오르면서 미안한 마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죄송하다는 표현만 가득 남긴 편지였지만, 조금이나마 사죄드리고 싶은 마음에 편지를 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저번 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함에 사과드리고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우려와는 다르게 교육이 잘 마무리되고 가시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드렸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드렸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당황하시며 무슨 편지냐고 물어보셨고, 자초지정을 설명 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씨익 웃으시더니 악수를 권하셨고, 악수를 하는 그 순간에도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 이후 3개월 간 교육은 잘 진행되었고, 할아버지와의 관계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어느덧 한해가 지나고,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위해서 더 이상 강사를 할 수 없게 되어서, 그만 두기 1주일 전부터 교육을 하는분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모든 분들이 다 하나 같이 아쉽다는 말씀을 하시며, 꼭 취업에 성공하라는 격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렵기도 했고, 보람도 느꼈던 초급반에도 사정을 말씀드리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무리가 된 교육도 있었지만 도중에 중단이 되었던 교육도 있었던 탓에 미안한 마음뿐이었지만, 결단을 내리고 연장지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들었던 교실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퇴근을 하는 중에 한분이 찾아오셨습니다. 9월 중순 초급반을 만들었을 때부터 함께한 젊은 아주머니셨습니다. 원래 사무직에서 근무를 하셨지만, 육아와 가정을 돌보면서 자기만의 개발시간을 갖지 못해서 컴퓨터를 잘 다루던 그 때와는 다르게 많은 걸 잃어버리셔서 처음부터 컴퓨터를 꼭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씀해주셨던 분이었습니다. 타자연습부터 성실하게 하시면서, 지금은 개인 블로그에 사진도 게시할 정도로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실력이 되신 성실하시고 항상 열심히 배우셨던 분이셨습니다.

 

"선생님 참 고마웠습니다.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셔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좋은 모습만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은 것 같은데요 뭘.."

"그게 다 선생님의 열정이라고 전 생각해요"

 

그러시며, 가방에서 문화상품권 묶음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취업하시면서 책 같은 거 구입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드려요"

"아니에요, 전 유급으로 일하고, 그에 대한 수고는 보수로 받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정말 그랬다. 분명 마음은 고마웠지만, 정성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금액이 상당했던 문화상품권의 양이었고, 수고에 대한 보수는 충분히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권유는 하지 말아달라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 간 함께 해주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짐을 싸 길을 떠나는 중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람 있는 삶보다는 나를 위한 이기적인 의도로 시작된 공공근로였지만, 감사하게도 어르신들 앞에서의 무례함까지도 열정으로 생각해주시는 귀한 분들을 만났고, 저에게 이타적이 삶, 그리고 모든 세대로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었던 시간이었구나!'

 

지금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서울에 올라와 형에게 일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어떤 일을 해야 보람을 느끼고, 재미를 찾을 수 있을지 최대한 많은걸 보고 경험하려고 합니다.

 

누구에게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흥밋거리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의 경험이지만, 저에게는 의도하지 않게 찾아온 새롭고 자랑스러운 경험으로 그리고 소소하고 원초적인 삶이 어떤 것인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귀한 경험으로 지금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2011.06.09 16:36ⓒ 2011 OhmyNews
#공공근로 #취업 #가장중요한것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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