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수리점 전파사
심규상
자칭 만능 전자제품 수리기사인 '순돌이 아빠' 길중선(69)씨에 대한 호기심은 이렇게 시작됐다. 3∼4평 남짓한 그의 가게는 전파사보다는 고물상을 떠올리게 했다. 진열장에 전시된 카세트는 전자제품 박물관에서나 나올 듯한 수십 년 전 제품이었고, 겹겹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작업장 안은 길씨가 앉아 일할 의자와 책상, 손님 한 명이 겨우 앉을 만한 공간이 전부다.
- 전파사, 전자제품 수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어렸을 때부터 했어. 국민학교, 중학교 때부터 라디오 같은 전자제품을 뜯었다가 다시 맞췄다(조립)가 하면서 놀았어."
- 직업으로 '순들이 아빠'를 시작한 때는요? "집이 가난해서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못 갔어. 그래서 당시 '충남무선기술학원'에 가서 기술을 배우기로 했어. 8개월 만에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당시 우리 기수는 7명인가 8명만 졸업했지. 끝까지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 졸업 후에 전파사에 직공으로 취직해 1년 가까이 일했어. 그러고는 대전 대동 3거리 근처에 자그마한 내 가게를 차렸어."
20대 초중반이었던 당시는 길씨의 전성기였다. 사람들이 꼬리를 물었고 제법 돈도 많이 벌었다.
"68년과 69년인데 그때는 진공관 전축시대야. 테레비(TV)는 구경하기 어렵고 라디오 아니면 전축이었지. 진공관 전축을 부품을 사다가 완제품을 직접 내가 만들었어. 케이스까지 사다가… 많이 팔 때는 일주일에 2대도 팔아봤어. 그때 쌀 한말이 1000∼2000원 할 때인데 전축 한대에 8만 원에서 9만 원씩 받았어. 벌써 까마득한 옛날 얘기네…." 하지만 돈의 소중함을 잘 모를 때라 쓰기 바빴지 모으지는 않았다. 스물여섯 나이에 미루던 군대에 입대했지만 천식으로 6개월 만에 의가제대했다. 제대 후에도 전파사를 계속했고 27살에 결혼을 해 1남 3녀를 두고 살아오는 지금까지 여기저기 가게 장소를 옮기며 전파사 일을 놓은 적이 없다.
"그러니까 제품 수리하는 일만 한 50년 정도 한 셈이네... 근데 근래에서야 쬐그만한 아파트 하나 장만했어. 그것도 딸애들이 번 돈 보태서…." - 돈벌이 좀 되지 않았나요?""젊을 땐 세상물정 모를 때니 쓰기 바빴고 좀 시간이 지나니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죄 바뀌는 거야. 좀 지나니 수입품이 들어와서 중구난방이 됐어. 이 기술이 옛날에는 고급기술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대우 못받는 일이 됐어."
'고급기술'에서 어느 날 '대우 못받는 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