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동굴 속의 탱고 (60)

60. 밤의 입

등록 2011.06.03 10:48수정 2011.06.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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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아주 강한 흔들림이 이어지고 난 후, 열망 사냥꾼은 미동도 없이 조용해졌다.

"오늘 저녁은 파티가 있어웅. 맛난 음식이야웅."

 

하며 알토와 소프라노의 팔을 하나씩 차지한 고양이가 기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 소리에 깼는지 흰갈매기가 부시시 눈을 뜨더니,


"우리집 마당으로 몰래 들어오던 그 놈이군."


하며 '끙'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고양이는 흰갈매기를 쳐다 보고는 '홍'하고 기쁜 콧소리를 냈다. 그리곤 그에게 달려가서 제 얼굴을 비벼대며 골골 소리를 냈다. 흰갈매기는 녀석을 몇 번 쓰다듬곤 우리쪽으로 휘휘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소. 2010년의 보카를 마음껏 즐기는 것도 좋지 않겠소? 얼마 뒤면 시간을 거슬러서 11년 전으로 가야 할 판이니 시간이 별로 없다오. "


"실컷 자고 나니 독도 풀리고 상처도 나았고, 이젠 여행을 즐기시겠다 이거군?"


조제가 빈정거리자 흰갈매기는 일어서서 옷을 탈탈 털며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조제 쪽으로 찡긋 윙크를 했다. 그리곤 여행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냐며, 인생도 여행의 도중인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는 흰갈매기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어떻거나 보카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문률을 철저히 이행하는 사람들인건 분명한 것 같았다. 다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지 척척 다 알고 있으면서 시침 뚝 떼는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아우, 머리 쥐나겠어! 출입구, 출입구가 어디야? 일단은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냐?나가자구, 나가!"


조제는 입을 삐죽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열망 사냥꾼의 코고는 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하자 긴 뱃속을 걸어서 우리는 놈의 입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해변의 암벽에 입을 걸치고 자던 녀석 덕분에 우린 계단을 뛰어내리듯 가뿐히 보카 항구에 닿을 수 있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2010년의 보카였다. 우리는 어두운 자갈길을 걸었다.

 

최근에 책과 꿈에서 본 보카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화려해지고 빛나는 네온싸인과 관광객들의 떠들썩함이 곳곳에 배어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까미니토 거리는 그 밤중에도 흥겨움으로 가득했다.

 

관광객들이 웅성웅성 술을 마시거나 밤의 산책을 즐기거나 밝은 빛의 음식점 창문으로 탱고 공연도 모였다. 우리가 열망사냥꾼의 뱃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이미 인형 웨이터와 알토, 소프라노는 무생물로 변해 있었기 때문에 남들 눈엔 그저 큰 인형을 안고가는 동양 여자와 동양 남자로만 비춰질 뿐이었다.

 

조제는 축 쳐진 인형웨이터를 옆구리에 낀 채여서 조제의 움직임에 따라 그 머리와 다리는 덜렁덜렁 춤추는 것이었다. 나는 알토와 소프라노 두개의 머리를 가진 꼬맹이를 등에 업고 긴 혁대를 끌러서 내 허리에 질끈 동여맨 참이었다. 그 두 개의 머리는 내 등에다 자신들의 등을 붙이고 보카의 밤 하늘과 거리의 불빛을 구경하고 있을 터였다. 아름다운 잿빛 눈을 가진 예쁜 인형으로 이미 변한 상태에서 그 둘의 손에는 재봉틀로 박음질 된 헝겊 인형처럼 고양이 인형이 고정돼 있었다.

 

"끄억, 아름다운 인형이군요."


남자 미국인 관광객 두명이 영어로 지껄이며 우리 곁을 지나쳐 갔다. 그들의 손엔 술병이 들려져 있었고 얼굴은 홍조로 가득했다. 절반은 눈이 감긴 상태로 둘은 어깨동무를 한채 비틀비틀 자갈길을 걸어서 저만치에 있던 클럽 안으로 사라졌다.

"저기, 멜레나가 있군."


흰갈매기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는 동시에 흰갈매기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그곳에는 허벅지가 길게 트인 탱고 드레스와 금빛 하이힐을 신은 멜레나가 관광객과 팔짱을 낀 채 사진 촬영에 응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찰칵하는 셔터 소리가 끝나자 마자 ,그녀는 뒤를 돌아볼 것도 없이 근처의 클럽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우리도 따라가야 하는 거지?"


나는 등에 업힌 머리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알토가 나직한 소리로 '그럼' 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나와 조제, 흰갈매기는 일렬로 줄을 지어 그 좁고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밟고서 지하로 내려갔다.

 


<계속>

2011.06.03 10:48ⓒ 2011 OhmyNews
#장르문학 #중간문학 #판타지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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