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도본부 공간 배치 안내도
김정현
아직까진 큰 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다들 느긋하게 이번 점거를 '즐기고' 있습니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밤을 보내고, 가끔 야식을 먹기도 하고, 자신이 갖고 온 침낭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입니다. 법인화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역설적으로 무척이나 경쾌합니다.
법인화는 나의 문제저는 교육학과 학생으로 대학 입학 후, 아니 그 전부터도 교육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 오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저 역시 이번 비상총회를 통해 본격적인 학생행동이 있기 전까지 교육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인 국공립대학 법인화 문제에 무관심했으며,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비상총회와 점거 농성은 내 손을 떠난, 혹은 이미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여겨왔던 법인화 문제가 내가 참여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나의 문제'로 바뀌는 역설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법인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학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본부 4층 복도 한 구석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점거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후회도 느끼지 않습니다.
법인화 이후의 대학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대학공간의 신자유주의화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는지를 살펴본다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 대학생들의 생활이 더 나아질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대학생들의 삶은 한마디로 말해 점점 더 팍팍해졌습니다. 이제 예전처럼 "대학 입학=자유"라는 공식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구조조정이 보편화되고 취업 경쟁이 심해지면서 학생들은 죽기살기로 스펙을 쌓고 있습니다. 대학 역시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서 '학사관리 엄정화'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삶에서 자율의 비중을 축소시켜왔습니다. 졸업 자격에 어학 성적을 명시하고, 거의 모든 과목에 상대 평가제를 도입하고, 복수 전공을 의무화하는 학사 정책들이 시행된 것도 지난 몇 년 사이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진정 필요한 것인지 저는 의문이 듭니다. 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억지로 영어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상대평가라 불가피하게 학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은 그나마 친절한 축에 끼는 상황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복수전공 의무화 적용을 받지 않는 마지막 학번이라 다행이라 해야 할지, 이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일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