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의 친정집. 넓은 마당은 손자들의 놀이터였다.
김혜원
"큰일났다. 이제 우리 두 늙은이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늙은이 사는 집을 달떡, 별떡 잘라먹더니 이제 목 넘어 꿀떡 한단다. 도대체 우리가 뭐 잘 못했다고 늙은이들 사는 집을 이러는지, 내가 치매 걸린 니 아부지 데리고 시청 바닥에라도 가서 드러누워 버릴란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친정엄마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시청으로 달려 갈 것처럼 다급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무슨 말인지 천천히 설명을 해보시라고 했지만 앞뒤 설명 없이 무조건 정부가 당신이 사는 집을 빼앗아 갈 거라는 말씀만 반복하신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보고 다시 전화 드릴 테니 잠시 기다려 보시라며 전화를 끊은 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에 관련된 보도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5월 17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5차 보금자리주택 후보지 4곳(서울 고덕, 강일3, 4지구, 과천 지식정보타운) 중에 부모님 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렸다. 부모님 집은 정부에서 5차 보금자리주택 후보지로 발표했으며, 그 집은 물론 그 일대가 전부 개발돼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고.
친정엄마는 노발대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전에도 서울시에서 집 앞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한다며 앞마당을 잘라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지난해는 살고 있는 집의 거실까지 도로에 편입되게 되었다는 통보가 왔다. 강일지역 임대 아파트 단지 건설로 인해 교통량이 늘 것으로 예상, 기존 4차선에서 6차선으로 도로 확장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이유였다. 해당 업체 관련자는 집 전체를 내놓던지 반이 잘라진 채로 살든지 좋은 쪽을 선택하란다.
친정엄마는 집이 반절만 남더라도 사시던 보금자리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오래 살아 정든 집이고,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두렵기만 한 것이다.
"아파트에 살고 싶었으면 벌써 이사 갔지" 부모님이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신 것은 23년 전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친정엄마를 위해 고덕동 공기 좋은 야트막한 산 아래 허름한 농가주택을 구입, 이층집으로 아담하게 신축했다. 그 집에서 자식들을 키워 출가시키고, 이제는 두 분만 남아 자식들이 떠나 비게 된 아래층에 세를 놓아 생활비를 충당하며 사신다.
두 분 모두 일흔 중반을 넘긴 연세이신데다,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신지라 살고 계신 집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지금까지 적은 금액이지만 살고 계신 집의 일부를 세놓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마음 편히 생활해 오셨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가 서민을 위한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며, 노인들의 주거공간이며 수입원이기도 한 집을 내놓으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위로랍시고, 새로 지은 좋은 아파트에 들어가 사실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니 더 펄쩍 뛰신다.
"내가 아파트 살고 싶었으면 벌써 이사 갔지 여기 살았겠냐? 니 아부지랑 나는 땅 집에서만 살아서 아파트 같은데는 답답해서 못 살아. 낡았든 불편하든 지저분하든 두 늙은이 집 앞에 텃밭이나 일구면서 죽는 날 까지 마음 편히 살라고 했더니, 왜 그것도 못하게 하는 거야. 아파트 들어가면 정부가 우리 두 늙은이 꼬박꼬박 생활비 대준다냐? 아파트만 뒤집어쓰고 있으면 누가 밥을 주냐 돈을 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