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
김종길
선녀봉 아래 삼거리에 이르자 주위가 캄캄해졌다. 비가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점퍼를 꺼내 우의를 대신하였다. 카메라도 가방에 집어넣었다. 전속력으로 걷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리막길이었다. 경사가 심해 몸이 자꾸 앞으로 쏠린다. 시멘트길에 피로한 발을 달래려 뒤로 걸었다. 비는 점점 굵어지고 짙은 안개에 옷은 흠뻑 젖었다.
불빛이 보였다. 가로등과 창문으로 비치는 집집마다 켜진 불빛이 무척 반가웠다. 대리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저녁 9시가 넘어서였다. 출장소 마당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아따, 인자 오시오. 그 먼 길을 걸어왔소. 전화를 했으면 나가 데리러 갔을 텐디." 사내주인이었다. 그의 말에는 걱정과 따듯한 인정이 묻어있었다.
민박집으로 들어가니 여주인이 놀란 표정으로 뛰어나왔다. 어두워져도 여행자가 나타나지 않자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줄 알고 방송을 할 참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그녀의 말을 거들며 얼마나 걱정했는지를 부연하여 설명했다.
여주인이 챙겨준 저녁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맛을 보라고 도톰한 민어회를 내놓았다. 소주 한 병을 시켜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식당에 모인 마을 주민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방으로 들어갔다.
잠은 의외로 오지 않았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그 황홀했던 구름바다가 계속 눈에 아련했다. 다시 민박집 사내주인을 만나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입이 귀에 걸릴 즈음 방으로 올라왔다. 짙은 안개로 아쉬운 여행이 될 거라는 처음의 우려는 기우였을 뿐이었다. 내일은 가거도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이런저런 가거도 그림을 상상하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