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법인화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5월 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대학본부 건물에 위치한 총장실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저는 지금 그 침묵을 행동으로 이끈 어떤 거대한 흐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년 지방선거 때부터 시작해 지난 4·27재보선 때 그 힘을 다시 한번 드러낸 거대한 강줄기입니다. 그 강줄기는 경제와 성장만을 말하는 보수 헤게모니에 대한 저항입니다. 불통(不通)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 정권은 인간을 '빵만으로 사는 존재'로 규정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집권했습니다. 그러나 집권 내내 양극화는 심화됐고 먹고사는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중산층도 등을 돌렸습니다. 애초에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입니다. 물질적 욕구는 충족되어야 할 기본적 욕구이지만 인간은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또한 욕망합니다. 그 인간적 요구를 정권은 묵살했고 국민은 분노한 것입니다.
인간을 빵만으로 사는 존재로 키워낸다면 그것은 사육에 다름 아닙니다. 인간을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기업이나 특정 조직의 잠재적 부품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고기를 얻으려 가축을 기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간은 사육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입니다. 대입을 위한 사육이 돼버린 중등교육도 모자라 고등교육까지 기업적 인간을 위한 사육의 장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사람 사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질 것입니다.
고등학생의 낭만이었던 대학생들은 이미 학점과 영어, 스펙의 포로로 고등학생보다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법인화는 이러한 교육의 사육화를 더욱 촉진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부와 정부여당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묵살했습니다. 80%의 압도적 반대 의견이 나온 학생 총투표 결과를 완전히 무시했고, 여당은 법인화법안을 국회에서 단 한 번도 논의하지 않고 직권상정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이제 본부는 법이 통과됐으니 법인화를 기정사실화 하고 요식적으로 학생에게 설립준비위에 자리를 주겠답니다.
애초에 학생들에게 법인화를 할지 말지의 선택권은 주어진 적이 없습니다. 법인화는 비민주적 절차의 산물입니다. 본부 점거는 법인화의 폭력적 강행에 대한 저항입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마치 촛불의 침묵이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되살아났듯, 80% 반대 총투표의 침묵이 지금 비상총회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이 사회를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의 인간 사회로 만들려면 교육과 사육 사이에 난 법인화 전선에서 절대 밀려선 안 됩니다. 서울대의 법인화는 국립대 전체의 법인화로 이어질 것이고, 국립대 법인화는 다른 대학들의 기업화를 더욱 촉진해 고등교육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것입니다.
제가 더욱 두려운 것은 서울대 법인화가 담고 있는 '사육'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기르는 것,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며 법인화 논의가 돌아가야 할 원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부 점거만으로는 법인화를 원점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본부를 점거하고 있지만 사실 법적으로 법인화를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은 본부가 아닌 국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4·27재보선과 그 이후가 보여주었듯 국회를 움직일 힘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사육장으로 내몰릴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국립대의 주인인 국민에게 있습니다.
본부를 점거하고 있는 백 명 남짓한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미래를 떠맡길 것인가요, 그들과 함께 지킬 것인가요.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쉽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소식을 퍼뜨리시고, 시간 있거나 서울대에 오실 일이 있는 분들은 매일 밤 열리는 특강에 참석하시거나, 서울대 총장실 '응원 관광'이라도 오시면 됩니다.
훗날 본부와 총장실이 대한민국 교육사의 성지(聖地)가 될 지도 모르니까요. 국민께서 자신들이 주인인 국립대의 교육을 지켜내신다면 말입니다. 지금, 서울대 학생들은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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