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강정마을 중덕해안으로 가는 길.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담은 설치미술물이 기지 건설현장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주빈
광해군은 명나라와 청나라가 교체되는 대륙 정세의 격변기에 두 강대국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중립외교를 취하여 국난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세력은 주변의 정세 변화에 둔감하여 친명반청의 사대외교를 고집하다가 결국 병자호란의 참화를 불러일으켰다.
21세기 동북아 정세는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펴던 시절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동안 동북아의 패권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통해 거대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소위 한·미·일 집단방위체제 구축을 통한 대중국 포위 및 봉쇄정책으로 맞서려고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수준이 2020년에서 2030년 사이에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은 서로 동북아의 패권을 추구하며 심각한 갈등을 빚어낼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동북아 정세에 비추어 볼 때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자못 크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가능한 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두 강대국 사이의 싸움에 휘말려 들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 동북아 평화 증진 및 군비 축소의 촉매자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그리하여 두 강대국 사이에서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담보해야 한다.
제주해군기지, 중-미 다툼에 휘말릴 빌미 될 수도이를 위해서는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있고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를 우리나라 중립외교의 기반으로 삼아 동북아 평화 증진 및 군비 축소의 촉매로 활용한다면 적어도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싸움에 휘말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된다면 위와 같은 중립외교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제주해군기지가 미국의 대 중국 공격용 기지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경향신문> '오피니언 시론'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거를 들며 미국이 유사시에는 제주 해군기지를 사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첫째는 한ㆍ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미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한국은 허여(許與)하고 미국은 수락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조항에 따라 미국은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할 권리를 원칙적으로 갖게 된다. 둘째는 미국이 전략적 중심축을 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면서 이 지역에 해군력의 60%를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함정이 늘어나면 기지가 더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이다.
셋째는 제주도가 지니고 있는 지리·군사적 특징이다. 공군과 해병대가 밀집된 일본 오키나와에는 대형 군함이 정박할 해군기지가 부족한 상황이다. 반면 제주해군기지는 6척의 구축함과 잠수함, 그리고 항공모함 정박까지 가능한 규모로 설계되어 있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제주해군기지가 이대로 건설된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에 미국은 대 중국 공격용 기지로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하려고 할 것이고 그 경우 우리나라는 본의 아니게 두 강대국 사이의 싸움에 말려들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병자호란의 참화를 다시 겪게 될 수도 있다. 국가안보를 위한다는 제주해군기지가 오히려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