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House', 35*50cm, 혼합재료, 2011년 작품
서영옥
형상과 단순한 공간이면서도 내밀한 서사성, 그리고 본성과 원형,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고향, 안식처, 관계 등을 생각한다. 때론 고향을 의미하고 꿈속에서처럼 치유나 어머니로도 대변된다. 동심으로부터 출발하고 꿈과 현실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상실한 것들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 화가의 그림 속 집들은 하나같이 곱다. 현실의 주택들 주변도 저렇듯 이쁜 곳이 있을까 싶은, 곱디 고운 배경 속에 있으면서도 집들은 더욱 화사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탓에, 그림의 가장 아랫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집들조차도 한결같이 세속 가운데에 붙박히지 않고 표표히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화가가 수도의 길로 들어서는 수도자의 출가(出家)를 '온갖 집착과 욕망과 갈등의 집으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한다고 해석한 결과로 보인다. 화가는 '집은 물질적 형상과 정신적 세계를 요하는 아이콘이 된다'고 했지만, 비록 결과의 오류가 될지라도 그림은 감상자에게 House보다 Home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아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림 속 집의 형체들이 장난감처럼 보이는 것과, 한결같이 고운 톤으로 처리된 배경도 그렇게 그림이 읽히도록 하는 데에 크게 일조를 한다.
집이 작은 것은 동심의 세계를 표상한다. 동심의 근원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자 기댐이다. 아이들에게 집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집이 바로 Home이다. 그림 속 집들이 장난감처럼 아담한 것은 House보다 Home을 소망하는 화가의 마음이 표상된 결과라는 말이다.
또, 자세히 보면 그림들의 배경도 그저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수선하고 복잡한 뉘앙스를, 숨길 듯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다. 집들도 일견 불안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전시회를 찾은 이들이 숲만 보고 나무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탓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들의 해석이 'Home은 House가 될 수 없는, 그러나 동행선상에서 갈 수밖에 없는 모순과 조화로 둘러싸인 우리의 삶, 그것은 곧 상생(相生)'이며 '원풍경'이라고 믿는 화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어쩔 것인가. 그런 점에서, 행복은 Home(Family)보다 Money에 달렸다고 믿는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그들을 그렇게 키운 성인들에게 화가의 그림은 보여줄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