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어요

정의로운 여성 고 김은숙 선배를 추모하며

등록 2011.05.26 10:07수정 2011.05.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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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운동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인공 김은숙 선배가 24일 불치의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여기 중국에서 듣고 황망한 마음 주체할 길이 없다.


아, 김은숙 선배! 어쩌면 이렇게 일찍 갈 수가 있는가.

1980년대 후반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선배들은, 여성의 몸으로 광주학살의 진짜 주범인 미국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기름통을 들고 부산 미문화원에 들어가 불을 질러 5·18항쟁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역할을 한 김은숙 선배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주었다.

재판장에서 국군에 의한 광주시민 살육학살만행의 진실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당시 국군의 이동을 통제할 권한을 가지고 있던 미국이 왜 전두환 군부 일당의 광주학살 투입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준열하게 단죄하는 모습에 많은 청년학생들과 국민들이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었다고 들려주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고 김은숙 선배를 문학의 선배로, 친언니로 따르며 좋아하던 정지원 시인(<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작사)이 나를 김은숙 선배가 있는 광릉으로 데려가 소개해주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땐 난 사실 선배들을 만나러 갈 때면 걱정부터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향후 우리의 나아갈 방향과 역할에 대해 밤을 세워가며 그렇게 열정적으로 말하던 선배들이 소련 붕괴 이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리가 너무 세상을 모르고 덤볐다', '너무 큰 이야기에만 빠져 있었다', '아직도 반미냐'라는 식의 말을 왜 갑자기 그리 강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또 방향을 잃어버린 선배들의 눈빛을 대하는 것도 마음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은숙 선배에게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경험담을 생생하게 듣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갔었는데, 이웃에 사는 한때 학생운동을 했다는 지인이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와 또 그런 논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사실 대학 가기 전 대학 선배들은 권위적이고 무서울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선배들이란 다 그랬는데 그중에서 가장 높은 대학의 선배이니 어련하랴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자상할 수 없었다. 혈육이 아닌 타인에게 진심 어린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기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선배들이 처음이었다. 생일을 챙겨주는 것은 물론 밥 사주고 술 사주며 고민도 들어주었다. 그래서 선배들은 다들 부자인가보다 했을 정도였다.


부모들이 무조건 경계하라는 데모, 반미, 통일, 진보 이런 '큰 이야기'를 단 한 번도 강요받아본 적도 없다. 오히려 평화로운 집회를 강제로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쏘며 탄압하는 경찰들에게 화가 나 화염병을 들고 나가려고 할 때 신입생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리던 선배들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선배들이 1995년 제대 후 복학해서 만나러 가니, 다들 민족이니 진보니 이런 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인권, 환경, 여성 등 서로 차이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작은 이야기'만 하니 납득이 되겠는가. 또 '작은 이야기'를 진짜 멸살하는 세력은 자본과 미디어,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미국인데 이런 미국의 제국주의를 끝장 내는 중심활동 없이 어떻게 작은 이야기들이 마음껏 꽃펴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의견을 말하면 이상하게도 선배들은 고개를 외로 돌렸다. 그런데 김은숙 선배는 내가 한 이런 말들을 호기심 어린 눈빛을 신중히 들어주었다.

"어머,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청년이 있었네. 신선하다."

김은숙 선배의 이 말이 그때 얼마나 반갑고 힘이 되던지, 그런 선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김은숙 선배는 말이 많지 않았다. 주로 듣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부산미문화원 의거에 대해서도 거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텔레비전에서 김은숙 선배를 다시 봤다. 1980년대 학생운동 관련 기획 다큐에서 피디가 '대학시절 행동에 대해 지금 돌이켜 후회는 없는가'라는 질문에 김은숙 선배는 '다시 그런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달리는 행동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지를 당당한 목소리, 빛나는 눈빛으로 분명히 말했다. 역시 김은숙 선배답다는 그때의 감동이 지금도 가슴에 생생히 남아 있다.

'인사하러 가야하는데' 하는 생각은 가슴 한켠에 늘 품고 있으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못했는데 이렇게 부음을 듣게 되다니. '지금도 이런 후배가 있었네'라며 대견한 듯 바라보던 선배의 눈빛에서 그때 큰 힘을 얻었었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는데.

정의는 말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이 중요함을 그렇게 아름답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깨우쳐 준 김은숙 선배의 삶은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지금도 온몸 던지고 있는 이 땅 후배들의 가슴에서 늘 함께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자주민보>에도 함께 올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자주민보>에도 함께 올린 기사입니다.
#김은숙 #5.18 #부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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