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비'로 이름을 떨친 권삼득의 묘.
완주군청 홈페이지
하지만 노래가 이렇게 인생역전 엘리베이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재상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노래 때문에 가문에서 퇴출당한 이도 있다. 안동 권씨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최초의 양반 출신 광대 비기비가 된 인물, 그의 이름은 권삼득이다.
삼득이, 처음 들었을 때 좀 촌스럽고 없어 보인다 싶지만 이것은 정조로부터 하사받은 귀하디귀한 이름이다. 정조는 하늘, 땅, 사람의 소리 즉 새, 짐승, 사람의 소리를 모두 얻었다 하여 그에게 '삼득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참고로 삼득 명창이 새타령을 부르면 부근의 숲 속에서 새가 날아들었다는 이야기가 인증으로 전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권삼득 명창의 인생에 노래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살펴볼 차례인데. 성미 급한 이들을 위해 권삼득 명창의 묘비를 먼저 살펴보라 권하고 싶다.
소리가 좋아소리 위해 태어난 인생이라.양반도 싫고 벼슬도 싫어오직 소리와 더불어 살다 가신비가비 명창국창 권삼득 명창한 많은 그 세상맺히고 서린 애환을 접고 두고여기 이목정에 고이 쉬시나니영령 앞에 귀 기울이며흥보가 덜렁게 한 마당이생시인 듯 쩌렁하여라권삼득 명창은 정조, 순조 때 활약한 최초의 비가비 명창이다. 여기서 잠깐 인터넷 국어사전에서 비가비의 뜻을 찾아보면 "조선 후기에, 학식 있는 상민으로서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을 이르던 말"이라 나온다. 권삼득은 그저 학식 있는 상민의 자제가 아니고 권세 높은 안동 권씨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말하자면 날 때부터 금수저 하나 입에 물고 나온 셈인데, 이것은 도리어 그 시대 명창에게는 삶의 굴레가 되었던 것이다.
권세 높은 양반가에서 글공부 대신 소리 공부를 한다고 하니, 굳이 상상의 나래를 펴지 않아도 권삼득 명창이 부모에게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는 쉬 짐작할 수 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허락할 수 없다' 혹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고얀 놈' 같은 사극 톤의 대사가 그치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도 판소리를 버리지 못하니 그 끝은 멍석말이였다.
사람을 멍석에 말아 물을 뿌려대며 때리는 멍석말이를 당하면 자칫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기 십상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가문이기에 자식을 멍석말이를 해서 때려죽일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건지.
허나 여기서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었으니 삼득 명창이(이때는 '삼득'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이니 '권정희'라는 본명으로 불렸을 게다) 이런 명대사를 날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리나 한 번 하게 해 주십시오."허위의식에 가득한 양반이라고는 하나, 그들 역시 심장이 있는 사람인지라 그 마지막 애원마저 뿌리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삼득 명창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노래했다.
곡명은 <춘향가> 중 '십장가'. 옥에 갇힌 춘향이가 집장사령에게 매를 맞으면서 그 숫자에 맞추어 자신의 절개를 읊은 노래였으니, 과연 탁월한 선곡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듣는 이의 애간장을 단숨에 녹여 버릴 정도의 절절하고 통절한 노래. 그 비장한 소리는 집안 어른들의 얼음장 같은 마음을 움직였으니 그를 죽이는 대신 족보에서 빼고 쫓아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시간의 강을 건너서도 여전히 유효한 말은?석개와 권삼득 명창의 소리,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심금을 울리는 경지였던 것이다. 임재범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 우리 여러분들 역시도 심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지 싶다. 노래에 바뀐 드라마틱한 삶의 풍경. 그것이 보통의 경지는 넘어서는 일이라 할 만하다.
이제 기꺼이 임재범의 '여러분'이 된 나는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하차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번 주 일요일에 틀림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을 생각이다. 다음 주에도 누군가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 노래를 부르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나가수> 제작진들이 내게 한마디만 할 수 있게 허락해 준다면, 그동안 뒤적였던 책에서 찾은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전방 보는 사람이 어찌 모본단(模本緞)만 가지고 장사를 하겠느냐?" 명창 송만갑(宋萬甲, 1866년~1939년)이 한 말이다. 옷감가게에 온 사람이 비단을 원하면 비단을 팔고, 무명을 원하면 무명을 팔듯이 청중이 원하는 소리를 자유롭게 불러 들려 주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중의 눈높이를 알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예술관, 시간의 강을 건너서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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