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동굴 속의 탱고 (58)

58. 바다의 기억

등록 2011.05.24 16:13수정 2011.05.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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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술병을 쥔 손을 파르르 떨더니 내쪽을 흘끗 바라봤다. 그건 일종의 묵언으로써, 이제는 어떻게든 합일을 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자 꼬맹이에게 안긴 고양이는 슬쩍 꼬리를 털며 입맛을 다시더니, "자신을 찾으러 가는 거야웅."하며 길고 긴 하품을 했다. 그러자 조제는 어깨에 힘을 팍 주더니 그 억센 팔로 고양이를 단숨에 날려버릴 듯이 바락거렸다.


"그래? 좋다구! 대체 어디로 데려다 줄건데? 설마 또 이따위 냄새 나는 곳은 아니겠지? 그래, 인생이란게 결국 남한테 손목 잡힌 채 마구 매달려 가는 거라 치자. 그렇다면 적어도 내 의지로 되는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지 힘이라도 날거 아냐? 난 말이지, 백번 헛된 꿈이라 한들 내 맘껏 감정 표출하며 살고 싶어.

 

그리고 그 꿈의 끄트머리에서 알듯 모를듯 여운 느끼며 어렴풋이 현실감 느끼며 잠깨고 싶다고! 내가 흘리는 눈물 한방울이 뭣 때문인진 불확실 해도 그냥 평생 그 느낌 고이 간직하며 서글플 때 마다 애타하면서 말야. 그 소망까지도 사치란 거야? 물론 그 꿈이 내 손에 닿지도 않을 게 분명해! 난 그런 목표따윈 안중에도 없이 그냥 무한한 영토 안에서 멋대로 개망나니 춤 한 번  췄다는 거에 만족하니까 굳이 나를 이 상황에다 쑤셔넣진 말아줘. 부탁이야!"


그러자 알토는 가만히 조제의 눈을 바라보다가, 솜뭉치 같이 작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콧등을 긁적이며 나를 향해 나직히 말했다.


"어느 시점이 좋겠어? 이를테면 말이지, 감수성이 사라지기 전에 일기장 속으로 들어가는 걸로 우린 결정했으니까. 물론 열망사냥꾼도 함께 가는 거야. 그러니 여긴 우리 아지트가 될 거야."


"뭐야?"


내가 멍하니 말을 잃고 있는 사이, 조제는 대뜸 고함을 질렀다. 이때다 싶었는지 소프라노는 한층 새된 소리로 입을 옴짝거렸다.


"카페 주인은 지금 아르헨티나에 살아. 우린 그의 현재를 거쳐서 1999년으로 나아갈 거야. 세기말, 광란의 바다로."


그리곤 소프라노는 팔에 안긴 고양이의 얼굴에 입김을 '호' 하고 불어서 콧등 주변의 털이 파르르 날리도록 했다. 그러자 고양이는 꽤나 기분이 좋은지 '옹'소리를 냈다. 그러자 소프라노는 잔뜩 으시대는 표정으로 고개를 쓱 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동성애자들의 천국 아르헨티나. 그 역시도 또다른 한국인이랑 동성애 커플로 살고 있어. 언젠간 나라의 허가를 얻어서 정식으로 결혼할 거라는 말도 있고. 뭐..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게이 탱고 클럽을 운영한다던가?"


"허! 이건 뭐! 뭐하는 짓이냐고! 추접하고 더러운 동성애자까지? 우리가 왜?"
"동성애가 아니라 인간애라 불러줘."


소프라노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손톱을 매만지며 슬쩍 눈을 흘겼다. 나는 한숨을 가벼이 내쉬곤 재차 물어보았다.


"있지... 너가 왜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건진 정말 모르겠지만 말야.. 하여간 일기장 주인이랑 다 연관 있는 거겠지?"
"물론."


소프라노와 알토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산뜻한 화음을 이루고는, 스스로도 만족한 듯 서로 마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꼬맹이의 두 얼굴들에게 이리 다가와 앉으란 시늉을 하곤 구석에 곯아떨어져 있는 인형웨이터와 흰갈매기를 돌아보았다.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소프라노는 이내,


"너희 각자의 보카. 그리고 열망사냥꾼의 뱃속. 이제 일기장 속으로 이 거대하고 역겨운 잠수함이 우리를 안내할 거야.후훗."


하고는 팔에 안긴 고양이에게 살며시 윙크를 했다. 그러자 고양이는 '야웅' 소리를 내며 소프라노의 팔에 제 얼굴을 부비더니, 한결 눈에 힘을 주고 우리를 향해 웅얼거렸다.


"야웅, 너의 이상을 더욱 확고히 하는 거야웅."
"하! 난 이상같은 거 없어. 내 인생인데 왜 내 의지대로 못해 가면서 쩔쩔매야해? 이 징글징글한 족속들아!"


그러자 알토는 깊고 깊은 바다로 가라앉기 일보 직전, 여객선 갑판 위에 선 선장처럼 읊조렸다.


"캔에 넣고 뚜껑을 뚝딱 닫기엔....젊음이 너무 아까워."
"아까워"


소프라노가 돌림노래를 부르 듯 그 말을 잡아챘다.

 

나는 주위를 휘둘러 보았다. 열망사냥꾼의 뱃속엔 놈이 마구잡이로 먹어치운 정어리 통조림이 여기저기 통째로 뒹굴고 있었고, 아직 손질 중인 날 생선들도 한꺼번에 밀려들어와 있었다.  페르도가 진종일 그 이상한 작업실 안에서 뜻도 없이 지루한 낮 속의 밤결을 어루만지며 쉴새없이 칼을 움직일 동안, 생선들은 자신의 꿈길 어느 한곳에서 급박한 내동댕이를 쳐진 것이 분명했다.


"바다를 쉼없이 떠돌다가 그들은 어느 순간 팽팽히 다가온 그물코 사이에 몸이 끼었어. 그리고 아련한 수면 위로 올려져서 몸이 가뿐해질 즈음, 뜻모를 상처와 함께 영원한 침묵 속으로 숨어들었지. 그리곤 찰칵하고 그 꿈들까지 차가운 캔에 담겨져 봉해진거야. 물살을 힘차게 가르던 꼬리는 바다의 촉감을 아직 기억해. 아가미를 꿈뻑여 숨을 쉴때 몰려온 들뜬 희망은 이제 옛추억일 뿐, 이제 그 머리는 가난한 사람의 스프에나 들어갔겠지. 저것들은 그저 정어리캔일 뿐이지. 바다란 건 기대하지도 못할..."


알토가 나레이션을 읊듯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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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4 16:13ⓒ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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