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기서 죽을 수 있어도 통과할 수는 없다

[연재소설] 미래는 남은자들의 유서이다(46)

등록 2011.05.23 10:38수정 2011.05.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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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둘러 출발했지만 소용없었다.

 

택시는 군 검문소 앞에서 발이 묶였다. 벌써 세 시간째다. 작동이 멈춘 컨베이어벨트에 올라앉은 듯 차들이 수백 미터나 늘어서 있다. 건너편 도로도 마찬가지다.

 

점령지에서는 신조차 이스라엘 정부의 통행증이 없으면,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없다. 

 

승객들과 짐, 자동차 뿐 아니라 얼굴 표정까지도 검색 대상이었다. 젊은 남자 승객들은 통행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모자라, 차 밖으로 나와 총구 앞에서 천천히 상체의 맨살을 드러내야 한다. 폭탄을 몸에 감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럽거나 눈길이 불손해보이면, 순식간에 도로 한쪽으로 쫓겨나는 처지로 전락했다. 뒷좌석에서 아라파트에 대해 가시 돋친 설전을 주고받던 중년의 남자들도 검문소에 진입하자 굳게 입을 다물었다.

 

시간은 저들의 소유물이다. 군인들은 느릿느릿 시간을 허비하며 검문하다가도, 일순간에 먹이를 낚아채는 독사처럼 공격했다.

 

수천 명을 차 안에 가둔 채 모욕과 협박으로 주눅 들게 하는 이 검문소는, 특히 임산부들에게 무자비하기로 악명 높았다. 얼마 전에도 만삭의 임산부가 탄 차에 총을 난사하여, 그녀는 가슴에 총알이 박힌 상태에서 출산해야 했다. 사전에 정지신호조차 없었다.

 

다음날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야간에 산통을 느낀 임산부가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검문소에 접근하던 중 총탄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함께 타고 있던 시아버지도 팔과 몸통에 총상을 입었다.

 

더욱 참혹한 사태는 그 후에 벌어졌다. 등에 두발의 총알을 맞아 피투성이가 된 임산부를 차에서 끌어낸 군인들은, 폭탄을 두르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면서 강제로 옷을 벗긴 후 한 시간이나 검문소 건물 옆에 세워 두었다.

 

"나는 오늘 밤 얼마나 많은 아랍인 아기가 태어날지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점령국 여성총리 골다 메이어의 고뇌처럼, 테러리스트 출산을 막겠다는 불타는 사명감을 가졌던 것일까.

 

그녀는 결국 출혈과다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그제야 군인들은 앰뷸런스를 불렀다.

 

검문소 책임자는, 병사들이 정중하게 정지할 것을 요청했음에도 억지로 통과하려 했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만삭의 아내를 태운 남편이 탱크와 장갑차로 가로 막은 검문소를 향해 돌진해서 벌어진 일이니, 자기 말을 믿으라고 했다.

 

분명히 둘 중의 하나는 인간이 아님에 틀림없었다.

 

태어날 생명을 죽이는 관행은 이 검문소만의 일이 아니었다. 이집트의 바로 왕이 산파들을 시켜 유대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했듯이, 야훼가 유월절에 짐승과 인간의 첫 생명들을 죽였던 전범에 따라, 다른 검문소들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산통을 겪는 임산부를 검문소 옆에 세워놓아 결국 사산시켰던 것이다.

 

군인들은, "너는 여기서 죽을 수는 있어도 통과할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점령은 살인자에게 어떠한 죄도 물을 수 없는 면죄부이다.

 

죽은 남편과 부상당한 시아버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말해야 했다. 남편은 비록 자기 목숨을 내주었으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총탄세례에 살아남은 시아버지는 예쁜 손녀를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긴장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사피나는 언덕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형형색색의 꽃들로 덮였던 언덕은 어느새 푸른 단색으로 변했다. 뜨겁고 건조한 사막풍이 그칠 때쯤 들판은 완연히 여름으로 변할 것이다.

 

뿌리가 뽑힐 때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나면 나쁜 일이 일어날 징조라는 맨드레이크도 오렌지색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6월이 되면 익은 열매를 따먹은 들짐승들이 자극적인 맛과 향에 취해, 색정 가득한 여름을 노래할 것이다.

 

너머에는 야생의 올리브나무들이 군락지어 흔들렸다. 저 나무들도 이제 앙증맞고 하얀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대홍수가 끝난 후 방주를 떠난 비둘기가 가지를 물고 온 이래 평화의 상징이 된 저 나무에서, 우리는 언제 진정한 평화를 딸 수 있을까. 잘 익은 올리브에서 짠 기름을 서로의 머리에 바르고 아픔을 눅일 날은 과연 오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죽는 날까지 볼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가 각자의 희망을 죽음 위에 내려놓고 사라진 후, 산 자들이 그것을 음미하고 해석하며 새로운 꿈꾸기를 오랫동안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노동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꿈꾸며 내일을 맞이할 것인가.

 

- 그럴 리가 없어. 저 놈들이 잘못 안 거야. 

 

아빠가 하마스의 비밀 정치위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엄마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그보다도 처음 당해보는 강제 연행에 놀랐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군인들은 늦은 밤 피에 굶주린 승냥이들처럼 현관문을 부수며 난입했다. 충격과 공포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 폭력을 즐기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간대였다.

 

감옥에 갇힌 야신선생이 텔레비전에 나와 피랍된 경찰을 살해하지 말라고 호소했을 때였다. 사피나는 시오니스트들이 남김없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빠에게 화가 미치리라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다.

 

아빠는 1층 서재에서 체포되었다. 아빠의 태도로 볼 때 그것을 예상했던 것도 같았다. 평소 같으면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다. 그런데도 엄마가 생일선물로 사준 티셔츠에 양복을 걸치고 계셨다.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때마다 아빠는 별 말없이 듣기만 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지나고 보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그날 퇴근길에 페노바르비탈 제제가 든 약병을 들고 오신 것은 평소의 아빠가 아니었다. 불면증은 약으로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이, 의사로서의 지론이었다. 그런 아빠가 수면제를 가져왔을 때 낌새를 알아챘어야 했다.

 

아빠는, 약효를 직접 확인하겠다며, 페노바르비탈 제제 두 알을 직접 손 위에 올려주었다. 꿀꺽 삼키면 돼. 그럼 오늘밤에는 꿈을 꿀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혹시 엄마가 달라고 해도 두 알 이상 주면 안 된다. 반드시 기억해 놔야 해. 두 알이야. 그 이상은 위험하다고 했다.

 

아빠가 엄마에 대한 처방까지 내놓았던 것은, 당신의 부재 이후 상황에 대한 고육책이었음에도 당시에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결혼을 통해 여성이 비로소 인간으로 공인되는 이곳에서, 가장 성스러운 결혼식 날 남편을 잃은 신부의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대중 앞에 공표하고 북을 치지 못했다 해서 남편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을까. 분노가 눈을 가리고, 저주로 귀를 막은 채 통곡하면서 몸부림치는데, 남을 볼 수 있는 눈은 어디에 달려있었을까.

 

아빠는 웃으며 보내주라고 설득하지 않았고, 그만 잊으라고 충고하지도 않았다. 그건 결혼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다. 상실의 고통은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라고 위로했을 뿐이다.

 

페노바르비탈은 은밀하게 몸속으로 퍼져나갔다. 처음 얼마간은 약을 먹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아빠가 처방한 대로 침대에 누워, 사하르 칼리파의 소설 『해바라기』를 다시 읽던 중이었다.

 

약효는 그믐밤 열린 창문을 통해 불쑥 넘어온 유령처럼 들이닥쳤다. 오렌지를 가득 단 나뭇가지가 돌풍에 툭 부러지듯 일순간 의식이 끊어졌다. 그것이 그날 밤 군인들이 난입한 것을 알아채지 못한 이유였다. 아빠는 당신의 뒷모습을 상처투성이의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이 부서지면서 잔혹한 소음이 집안을 채웠고, 엄마가 비명을 지르고 동생의 이름을 불렀을 때까지도 사피나는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 싸피나! 왜 그러고 있는 거야!

 

황급히 들어온 엄마가 마구 흔들었을 때 의식이 돌아왔지만, 아직도 정신이 몽롱했다.

 

- 누나! 아빠가 잡혀가잖아!

 

의식은 한 순간에 명료해졌다. 계단을 구르듯 1층으로 뛰어 내려갔을 때, 군인들에게 둘러싸인 아빠는 벌써 현관 밖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두 눈은 가려졌고, 두 손에는 얇은 플라스틱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괜찮다. 아무 일 없을 거다. 가족들의 비명 섞인 탄성이 터질 때마다 아빠는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아메드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군인들이 아빠를 소형 트럭 뒤 칸에 밀어 넣고 떠났을 때, 엄마는 눈가를 손으로 닦았다. 그렇지만 곧바로 아메드의 손을 잡고 꼿꼿한 걸음으로 집안에 들어왔다. 별일 아닐 거야. 저들이 잘못 안 거야.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군인들은 방마다 들락거리며 서랍들을 꺼내 뒤집어엎었고, 책들을 쏟았으며, 옷가지들을 바닥에 뿌린 후 밟고 다녔다. 그들은 아메드의 책가방과 학용품들도 방바닥에 던진 후 군화발로 짓이겼다.

 

남동생은 위축되거나 울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대견한 우리 아메드.

 

침대도 마찬가지였다. 군홧발로 침대 위에 올라간 그들은 천정을 한번 올려본 후 내려오더니 매트리스를 거꾸로 뒤집고는, 교활한 눈빛들을 주고받으며 칼로 밑창을 찢어버렸다. 말이 가택수색이었지, 실제로는 모든 기물을 파괴하려는 목적이었다. 심지어 엄마가 앉아있던 식탁의자의 얇은 쿠션도 칼질 대상이었다.

 

그들의 광기 가득한 공격은 더 이상 엎어버릴 것도, 밟고 다닐 새로운 물건도, 찢어버릴 천조각도, 끄집어낼 먼지조차 없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는 증거물이라며, 종이상자 한 개 분량의 책과 병원서류들을 가져갔다.

2011.05.23 10:38ⓒ 2011 OhmyNews
#팔레스타인 #불법연행 #검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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