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가 있는 절다보탑 좌우로 시비들이 정말 '줄을 지어' 서 있다. * 사진은 전경이 카메라에 들어오지 않아 세 장으로 나누어 촬영한 것을 대충 붙인 것이다. 실제 모습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제현사의 전경은 대략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여느 사찰과는 아주 판이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중앙에 다보탑이 보이고, 좌우로 시비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팔각정' 형태인 절 건물도 정말 특이하다.
정만진
"시는 역시 짧아야 한다"많은 시화전을 보았고, 지금도 제현사에서 시비들을 감상하고 있지만, 시는 역시 짧아야 한다! 액자에 든 시화전 작품들이 아무리 보기에 좋아도 10행을 많이 넘어서면 읽기가 어려웠다. 의자에 앉거나 방에 드러누워서 시집을 읽는 것과는 독서 환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비의 시는 실외에 세워진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시화전의 시보다도 더 짧아야 한다.
땡볕에, 아니 그늘이 있다 하더라도 단 하나의 시비도 아니고 작품이 여럿인 경우에 서서 긴 시를 읽기는 어렵다. 긴 시 앞에 서면 의욕이 벌써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역시, 시는 짧아야 한다! 그런 뜻에서, 제현사에서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 단연 압권이다.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얼마나 함축적인가. 이게 바로 시, 산문 아닌 시이다. 흔히 산을 오르면서 사람들은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갈 때 보는데, 그것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절창이 되었다!
올라갈 때는 빨리 산꼭대기에 닿아야지, 몇 시 몇 분까지 정상석 옆에 서서 기념 사진을 찍어야지, 누구누구보다 먼저 올라야지, 등등의 이유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목적과 목표가 있어 사람이 거기에 얽매이는 것이다.
그러나 하산할 때는 다르다. 여유가 있다. 자신과도 경쟁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다툴 일도 없다. 비로소 꽃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산새의 울음소리도 귀에 젖어든다. 올라갈 때는 정상으로 난 최단거리 등산로만 밟았지만, 이제는 좁고 가녀린 오솔길도 문득 걸어보고 싶어진다.
인생이 바로 그렇다. 뭔가를 추구하여 맹렬히 나아갈 때는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다. 아니, 늙어서도 욕심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은 그렇게 의식하지 않지만 한발 비켜선 남이 볼 때는 그것은 비인간적인 삶이다. 고은은 그러한 인생의 비인간화를 단 열다섯 글자로 일갈한 것이다. 어찌 보는이의 가슴이 서늘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