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돈인데... 투병교사 도우면 처벌한다고?

[현장] 교원성과급 차등지급제 학교현장 반발 들어봤더니

등록 2011.05.14 13:57수정 2011.05.1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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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 5월 중에 지급되는 교원성과급 지급이 임박했다. 1인당 적게는 20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 원까지 생기니 교사들이 좋아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학교마다 억지로 교사들의 등급을 매기고 있고, 교과부는 '균등분배'를 하거나 '순환등급'을 매기는 학교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찾으며 금지 공문을 보내고 있다.

2002년 도입된 교원성과급 제도는 2개월 이상 일한 교원에게 교육 성과에 따라 세 등급(S등급, A등급, B등급)으로 나누어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는 제도다. 교과부는 "열심히 일하고 성과가 뛰어난 사람이 급여에서 우대받아야 한다"는 원칙 하에 교사들을 경쟁시키고, 이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라고 주장한다.

얼마 전 서울 지역의 몇몇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과급 차등지급에 대한 학교 현장의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재 각 학교에서 성과급 지급을 위하여 어떤 기준을 만들고 있고, 지급된 성과급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각 학교의 사정을 듣고는 왜 차등성과급 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현실을 알게 되었다.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균등분배를 결정한 학교도 있고, 교장 선생님이 먼저 나서 최고등급 교사들이 최저등급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배분할 것을 제안한 학교도 있다. 나아가 기간제교사들에게도 성과급을 분배하기로 한 학교도 있고, 성과급을 반납하여 투병 중인 동료교사나 가족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 학교도 있다. 이런 것들은 교과부 지침에 의하면 모두 위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게 과연 교육적이고, 인간적인 일인가?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균등분배를 결정한 학교도 있고, 교장 선생님이 먼저 나서 최고등급 교사들이 최저등급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배분할 것을 제안한 학교도 있다. 나아가 기간제교사들에게도 성과급을 분배하기로 한 학교도 있고, 성과급을 반납하여 투병 중인 동료교사나 가족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 학교도 있다. 이런 것들은 교과부 지침에 의하면 모두 위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게 과연 교육적이고, 인간적인 일인가?김행수

[A중] 전 교사 투표로 압도적 다수(28 대 5)로 균등분배 결정
교장이 "학교 평가에서 불이익 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성과급을 반드시 차등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사들이 전체 교사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의를 제기하여 전체 교사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여러 교사들의 제안으로 결국 '교육당국의 원안대로 차등지급', '성과급 감액 같은 불이익 처분을 감수하더라도 균등분배'라는 두 가지 안을 놓고 표결을 진행했다.

개표 결과 차등지급안은 5표, 균등지급안은 28표가 나왔다.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교장은 망연자실했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이 학교 외에도 인근 지역 J중, P고, S1고, S2고 등도 성과급을 전 교사들이 균등분배하기로 했다.

[B고] 전 교사 균등분배에 기간제교사까지 성과급 분배
이 학교는 이전부터 성과급을 균등분배한 학교이다. 올해 당국이 워낙 강하게 협박을 해 와서 달라질 법하지만 교사들은 다시 전 교사 균등분배를 결정했다. 더 나아가 기간제교사들이 성과급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같은 동료교사로서 미안한 일이라는 공감대가 이루어져 이에 대한 대안을 검토했다.

그 결과 몇 년 전부터 희망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자신의 성과급 일부를 떼어서 반납을 하고 그것을 모아서 기간제교사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기로 결정했다. 올해도 어렵지 않게 이런 결의를 모았다.


똑같은 수업과 업무를 하면서도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기간제교사들과도 이를 나누고 있는 이 교사들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 망정 처벌을 할 수 있을까?(참고로 전교조와 민주노총은 기간제교사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C중, D중고] 투병 중인 교사와 가족에게 성과급 일부 모아서 지원 결정
이 학교에는 투병 중인 교사가 있다. 어느 교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성과급 중 일부라도 투병 중인 교사와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고 거의 아무런 반대 없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다. 또 다른 D중과 D고에서는 교사의 가족이 장기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한 교사가 제안하여 성과급 중 일부를 모아서 성의를 표하기로 했다. D중은 전 교사가, D고는 전체의 2/3에 이르는 교사들이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교과부의 지침에 의하면 균등분배도, 재분배도, 지급된 성과급을 모아 다른 곳에 쓰는 것도 모두 불법이다. 그런데 성과급을 반납하여 투병 중인 동료 교사 또는 그 가족의 치료비로 쓰겠다는 교사들을 처벌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또 그것이 교육적인가? 아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인가?

[E고] 교장이 'S등급 교사들이 B등급 교사에게 성과금 분배' 제안
E고 교무회의에서는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교장은 성과급 차등지급을 주장하고 교사들이 이에 반대해서 언쟁이 일어나는데, 이 학교에서는 교장이 먼저 성과급 차등지급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똑같이 고생하는 교사들끼리 등급을 매겨서 돈 몇 푼으로 차별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교장이 "그냥 S등급 교사들이 B등급 교사들에게 얼마씩이라도 나누는 걸로 하면 어떻겠냐?"라고 먼저 교사들에게 제안을 한 것이다. 결국 한 교사도 반대하는 사람 없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교과부는 동료 교사들을 차별할 수 없다는 이 교장을 처벌해야 할까?

 전교조 경남지부는 차등성과급제에 반대하며 모은 사회적 기금의 일부를 비정규직 자녀 장학금으로 지원한다. 사진은 차등 성과급제 반대 집회 모습.
전교조 경남지부는 차등성과급제에 반대하며 모은 사회적 기금의 일부를 비정규직 자녀 장학금으로 지원한다. 사진은 차등 성과급제 반대 집회 모습.전교조 경남지부

교육감들도 반대하는 차등성과급, 꼭 해야 하나?

지난 4월 충남 아산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이례적으로 정부 정책인 교원성과급 차등지급에 반대하는 입장이 나왔다. "교육공무원 성과금(급) 가운데 개인 성과금 지급 방식은 교사들 간의 불신과 위화감을 조장한다. 개인 성과금의 차등지급률은 최소화하고, 학교 성과금은 성과지표를 시도교육감이 자율 결정하여 시행하도록 건의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실상 '교원차등성과급제의 폐지 또는 대폭 축소' 입장을 밝힌 것이다.

어떤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현장적합성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현장에서 당사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성공하기 힘든 것이 이치이다. 현장적합성 면에서 교원성과급 차등지급 제도는 실패로 보인다. 교과부가 시도교육청을 앞세워 징계와 불이익으로 협박하고 있지만 많은 법률가들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이들을 처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교사들 대부분이 차등성과급을 반대하는 가운데 교육당국은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징계니 불이익이니 하는 협박을 하고 있다. 이런 협박이, 이미 차등성과급으로 교사들을 경쟁시키려는 정책은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반대하고 있고, 교육감들조차 비판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강행하는 것은 오직 MB정부와 교육관료들뿐인 것으로 보인다. 성과급 차등지급제를 폐지하는 것이 정답 아닐까?

 맥킨지 보고서의 일부. 이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최고의 학업성취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핀란드에는 교원 성과급 제도 자체가 없다. 교사의 질이나 자발성은 최고로 알려져 있고, 이것이 핀란드 교육 성공의 요인이라고 쓰여 있다.
맥킨지 보고서의 일부. 이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최고의 학업성취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핀란드에는 교원 성과급 제도 자체가 없다. 교사의 질이나 자발성은 최고로 알려져 있고, 이것이 핀란드 교육 성공의 요인이라고 쓰여 있다.자료 갈무리

교원차등성과급 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핀란드가 보여주고 있다. 2010년 9월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Company)'가 미국 학생들의 성적과 교사들의 관계에 대한 재미있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보고서는 세계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제일 잘한다는 핀란드, 우리나라, 싱가포르의 교사들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교사가 되는 학생들의 학창 시절 학업성취도를 살펴보니, 싱가포르는 상위 30%, 핀란드는 상위 20%인데, 우리나라는 상위 5% 이내에 속하는 학생들이 교사가 된다고 한다. 이에 비하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낮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은 전체 교사 중에서 학창 시절 성적 상위 30%에 속하는 교사의 비율이 23%이며, 빈민지역에서는 14%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핀란드와 우리 나라, 싱가포르는 모든 교사가 상위 30% 이내의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었으며,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교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라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핀란드에는 교원성과평가제(performance evaluation)는 물론 교원성과급(performance pay or bonus) 제도 자체가 없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하는 사람이 있다면 핀란드에서는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 교육 성공의 비결에 대한 질문에 교육부 관리는 세 단어 "teachers, teachers, teachers(교사, 교사, 교사)"라고 말한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학생들이 공부 제일 잘하는 나라이고 교사의 질과 자발성도 세계 최고로 평가되는데, 교원성과급제도 자체가 없다.

맥킨지 보고서가 밝힌 핀란드 사례는 성과급으로 교사들을 평가하여 줄 세우는 것으로는 교사들의 자발성을 끌어낼 수 없으며,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교원성과급 #핀란드 #균등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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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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