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에 열중하고 있는 양준혁 해설 위원
고범중
야구선수 양준혁. 양신 양준혁. 그가 은퇴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야구선수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고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그를 볼 수 있는 곳은 야구장이 아닌 TV 예능 프로그램, 야구 중계 프로그램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대학 등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32년 야구인생을 통한 경험들을 강연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5월 11일에는 양준혁씨가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를 방문했다. 외대 학생들에게 '도전'을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강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넓은 강의실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약속된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 강연실 입구가 시끌 시끌해지기 시작했다. 양준혁씨가 등장한 것이다. 양준혁씨는 "양신이다!", "정말 키 크다!", "귀엽다"와 같은 탄성을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강연대로 다가갔다.
곧이어 마이크를 잡은 그는 힘찬 목소리로 인사하며 "위기에 맞선 담대한 도전"이 오늘의 강연 주제라고 소개했다. 곧이어 "이 주제 생각하느라 밤 샜다"며 웃자 자리에 참석한 많은 학생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잠시 후 분위기가 진정되자 "내 32년 야구인생에는 참 많은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뛰어넘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여러분도 인생의 크고 작은 위기를 극복하고 멋진 인생 살길 바란다"며 사뭇 진지하게 강연을 시작했다.
32년의 야구 인생을 끝내던 날2010년 9월 21일은 삼성과 SK의 프로야구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하지만 이날이 팬들에게 평범하지 않았던 것은 '양신'의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은퇴할 때 SK 와이번스의 김광현 선수가 선발이었는데 3삼진을 당했다. 처음에는 선배가 은퇴하는 경기에서 154km의 전력을 다한 투구에 다소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2번 삼진을 당하고 나니 오히려 맞춰주는 것보다 전력을 다해 나를 상대해주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고맙더라. 나를 특별대우 하지 않고 전력을 대해 상대한 것이 오히려 나를 인정하는 것이고 대우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은퇴 경기를 앞두고 팬들에게 "안타 하나 치겠다"고 공언했던터라 양준혁씨는 더 머쓱했을 것 이다. 하지만 자신을 보기 위해 몇 시간 혹은 몇 십 시간을 기다린 팬들에게 삼진만 보여줄 수는 없었다.
"7회에 김광현 선수가 내려가고 이후 송은범 선수가 올라왔고 드디어 내 인생의 마지막 타석을 들어섰지만 안타를 치지 못 했다. 평범한 2루수 앞 땅볼을 쳤는데 생각할 것도 없이 내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야구인생의 미련을 태워버리듯이."
은퇴 경기가 열리던 날의 대구 하늘은 맑았다. 그래서 지켜보는 팬들도 뛰는 양준혁 선수도 맑은 마음으로 경기를 치루고 양 선수의 은퇴식을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경기 후 은퇴식이 열리게 되었는데 경기 전까지만 해도 맑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내리고 조명은 나만 비추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 언론에서는 '하늘도 울고 양신도 운다'고 하더라. 관중석에 조명이 다 꺼져서 나는 팬들을 볼 수 없었는데 팬들이 핸드폰 불빛으로 밝혀줘서 그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인 것 같더라."그렇게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마치 인생이 끝나버린 듯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야구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에게 '인생=야구'였기 때문이다.
"은퇴하고 얼마 동안은 너무 쓸쓸하고 외롭더라. 인생에서 나만 혼자 남은 것 같고. 하지만 생각해보니 난 큰 행복과 행운을 가진 야구선수였다. 현역 시절에는 이승엽 뒤에 있는 2인자로 지냈지만 나와 함께 내 야구 인생의 끝을 축하해주었던 팬들이 있었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