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가 들어오려면 10일을 기다려야 하는데, 5월 2일 예상치 못한 지출로 생활비가 바닥나고 말았다.
김현자
그렇게 어린이 날을 보내고 5월 6일 다시 계산을 했다. 어린이 날이 아니어도 어버이 날과 부처님 오신 날 등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11일 이전에 돈 쓸 일이 많아 비상금 통장에서 돈을 찾긴 찾아야 하는데 찾은 만큼 쓰게 마련이라 가볍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15만 원을 찾아 그중 10만 원으로 고기도 사고 상추며 반찬 몇 가지를 사다 어버이 날 시부모님을 집으로 모셔와 고기를 구워 드렸다.
6년째 신용카드 없이 살고 있다. 게다가 이처럼 현금인출카드로 돈을 찾을 수 있는 통장 잔고가 바닥나면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은행 마감 전까지 창구에 가야만 돈을 찾을 수 있도록 해놓아 갑자기 돈이 필요할 적에, 난감할 때가 많다. 아마도 예전처럼 신용카드가 있다면 요즘처럼 돈 쓸 일을 앞두고 이처럼 번거로운 일도, 돈 걱정도 줄었을 것이다. 카드 한 장만 있으면 현금을 쉽게 마련할 수 있고 무엇이든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카드의 혜택과 편리함, 누릴 대로 누렸는데...6년 전까지만 해도 내게도 신용카드가 4개나 있었다. 그중 1994년 12월에 발급한 A카드의 한도는 1200만 원. A카드 발급은행은 성인이 된 1985년부터 거래를 했고 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적은 액수일지라도 적금도 자주 들고 했기에 1990년대 말 아무런 담보도 보증인도 없이 1000만 원을 신용으로 대출까지 받을 정도로 내겐 주거래은행이었다. 그런 만큼 신용카드 한도도 높았다.
남편과 내가 가게를 하다 보니 우리는 고객이자 가맹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은행이나 카드회사에서 신용카드 발급 제안이 먼저 왔다. 2000년 초, 당시 신용카드 회사들은 카드 유치 경쟁을 하며 각종 혜택을 내밀었다. B카드는 놀이시설을 이용하는데 혜택이 많아서, C카드는 중소사업자들에게 혜택이 많아서, D카드는 대형마트 앞에서 권유하기에 난 생각없이 카드를 발급 받았다.
나머지 3개 카드의 한도도 700만 원, 350만 원, 250만 원. 대략 이랬다. 한 번도 연체하지 않은 데다가 사업자이고 A카드사와의 신용상태나 거래금액 등 조건이 좋다보니 발급 당시 30만~50만 원으로 출발한 한도는 그리 오래지 않아 몇 백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한도가 높은 만큼 쓰기 편했다. 그리하여 한동안 카드의 혜택과 편리함을 누릴 대로 누렸다. 지금처럼 생활비가 바닥 나면 서슴없이 현금서비스도 받았다. 어버이 날이나 부모님 생신을 앞두고 지금처럼 목돈 들어갈 일에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당장 가진 현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선물을 해드리고 멋진 곳에 모시고 가 생색을 내기도 했다. 카드로 마당놀이 같은 표를 예매해서 모시고 가기도 했다. 여행할 때도 신용카드 덕분에 불안하지 않았다.
화재로 집 전소... 설상가상으로 매출도 '뚝'신용카드 사용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4월 화재 직후. 몇 년 전 화재 관련법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내 실수로 남의 집을 홀랑 태워도 내 집까지 전소했다면 도덕적인 책임만 있을 뿐 일부러 불 내지 않은 이상 100%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다. 당시가 그랬다. 이웃의 실수로 불이 났는데 그 집과 우리집이 다 타 보상비 한 푼 받지 못했다.
복구가 끝나고 두 달 만에 집에 들어갔지만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더 많았다. 형제들이 냉장고며 세탁기 같은 큰 가전제품들은 사줬지만,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서 사야 할 것들이 많았다. 화재 복구 비용 때문에 통장의 돈은 바닥난 지 오래인데다, 사고 사고 또 사도 살 것은 끝이 없으니 자연 쪼들렸다. 옷이 몇 개 밖에 없어 남편이나 아이들이 옷을 벗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빨아 말려야 할 정도로 쪼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