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외고 정문.
권우성
검찰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할 때, 오랜 지인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관계에서 대가성을 입증할 수 없자 포괄적 뇌물죄을 거론하며 "대가성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검찰이 학부모와 교장·담임·이사장 사이에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니까 돈은 받아도 대가로 뭔가 청탁을 들어주지만 않으면 무죄라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논리라면 교사의 촌지도 처벌해서는 안 된다.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모아 주었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주장 역시 억지다. 이 사건은 일반 학교의 3배에 이르는 등록금에 불법찬조금까지 내야하는 처지에 놓인 한 학부모가 자금 조성과 사용처 등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고 내부고발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도 검찰은 모든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낸 학부모가 '왕따'를 자처하면서까지 왜 이를 문제 삼고 세상에 알렸겠는가.
"학교를 위해서 썼기 때문에 무죄"라는 주장은 법적으로 따져도 말이 안 되는 검찰의 억지 주장이다. 기자가 국민에게 돈을 받고도 언론사를 위해서 썼다고 하면 무죄이고, 정치인이 돈을 받고도 정당을 위해서 썼다고 하면 괜찮다는 뜻인가?
불법 찬조금이 학교발전기금의 하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학교발전기금은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 교육부령인 '학교발전기금의 조성·운용 및 회계관리요령'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의 '학교운영위원회 운영 요람' 등 관련 법령에 의해 조성과 관리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이에 따르면 "학교발전기금을 교직원의 인건비성 경비나 간접교육비 등(예: 자율학습감독비)에 사용한다거나 교육활동과 직접 관련이 적은 교직원의 단체활동(예: 회식비)에 사용하는 것은 법에서 정한 사용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다.
학교발전기금에 대한 기존 대법원의 판례 역시 "학교발전기금은 그 조성·운영 및 사용의 주체인 학교운영위원회에 귀속되고, 그 사용 용도는 학교 교육시설의 보수 및 확충 등으로 엄격히 제한되어"있다며 "그 용도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는 학교발전기금을 임의로 제한된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였다면 그 사용행위 자체로 불법영득의 의사를 실현한 것이 되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밝히고 있다.(대법원 2006.9.22. 선고 2005도3757 판결, 대법원 2007도4713 업무상횡령 2010.7.22. 등 참조)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불법 찬조금 22억 원 가운데 최소 3억 원 이상은 교사 회식비와 선물 구입비, 자율학습 지도비로 사용됐다. 이는 학교발전기금의 용도로 엄격히 금지된 항목들이다. 검찰은 대법원의 판례를 인용하고 있지만 정작 이 경우에 정확하게 적용되는 판례는 모른 체 하고 있다.
1만 원 받은 교통경찰과 1000만 원 받은 교장, 누가 더 나쁜가?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곽노현) 감사 결과에 의하면, 3년간 학부모에게 1000만 원 이상의 금품·향응을 받은 교직원은 대원외고 교장·교감 등 5명, 300만 원 이상 받은 교사도 30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중 해임 당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이 현재 계속 교장·교감·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금품·향응 수수와 관련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교육공무원 금품·향응 수수 관련 징계 처분 기준(2007년 10월 기준)에 의하면, 위법부당한 처분을 하지 않더라도 직무 관련하여 300만 원, 직무연관성이 없는 의례적 금품 수수라도 500만 원 이상이면 파면·해임의 배제징계를 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원외고는 단 한 명도 파면·해임의 배제 징계를 당하지 않았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보자. 2007년 1월 대법원은 신호위반을 한 운전자에게 담배값으로 1만 원 받은 경찰에게 해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비록 원고가 받은 돈이 1만 원에 불과하여 큰 금액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경찰공무원의 금품 수수 행위에 대하여 엄격한 징계를 가하지 아니할 경우 경찰공무원들이 교통법규 위반 행위에 대하여 공평하고 엄정한 단속을 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일반 국민 및 함께 근무하는 경찰관들에게 법적용의 공평성과 경찰공무원의 청렴의무에 대한 불신을 배양하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대법원 2006.12.21, 2006두16274 해임처분취소)
대원외고 교장 등에게 이 판결을 적용하면 파면 정도는 무난해(?) 보인다. 1만 원 받은 교통경찰은 해임인데, 1000만 원이 넘는 금품·향응을 제공받은 교장·교감·교사는 단 1명도 해임을 받지 않았다니. 과연 학생과 시민은 위의 경찰과 이들 중 누구의 죄가 더 중하다고 할까?
2011년 2월 대법원은 1억46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 돼 1,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에게 징역 4년과 벌금 1억 원, 추징금 1억46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