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이 없는 집 전화, 내가 사랑해 줘야지

등록 2011.05.03 09:50수정 2011.05.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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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시대입니다. 아니 스마트폰 아이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편리함의 첨단을 걷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책상에서 침대 머리맡에서 화장실에서 주방에서 어디서든지 움직이지 않고도 휴대폰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 전화는 천덕꾸러기가 됩니다. 집 전화로 연락을 취해오는 사람이 없으니 자연 받을 기회도 거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 벨이 울릴 때면 반갑기조차 합니다.

 

달려가 전화를 받으면 십중팔구는 별 의미 없는 전화 내용입니다. 여론조사를 한다며 음성 녹음된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금융기관을 사칭하며 카드 연체 중이오니 지금 곧 연락 바란다는 사기성 전화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물건을 판매하고 만족도를 조사하는 상업성 전화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받으면 기분이 유쾌하질 않습니다. 그래도 천대 받는 집 전화가 자기 일이 있는 것 같아 그냥 보아 넘기려 합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그것이 아닙니다. 휴대폰 2천만 대 시대에 아직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 아내가 그런 사람에 속합니다. 별세계에서 온 사람 같지 않아요? 하지만 그의 사회 활동은 왠만한 사람 배는 될 것입니다. 사회 활동을 하려면 필수품이 몇 있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휴대폰입니다. 연락처로 집 전화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내는 급한 김에 제 휴대폰 번호를 카드에 기입하거나 알려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저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여보, 당신 폰 번호를 알려줬으니까 나 찾는 전화 올지 몰라요. 무뚝뚝하게 받지 말고 가급적 친절하게 받으세요."

 

억센 경상도 억양은 무뚝뚝한 사람으로 쉽게 오해하게 만듭니다. 대면하고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유무선으로 주고받는 전화 통화일 때는 더 그렇습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아내는 저에게 가능한 한 친절하게 전화를 받을 것을 거듭해서 당부합니다.

 

사실 아내 휴대폰인 줄 알고 번호를 눌렀다가 남성인 제가 받으면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저는 점잖게 이렇게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부부 공용 휴대폰입니다. 바꿔드리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예, 잠시만요."

 

가능한 한 말을 길게 끌면서 친절한 목소리로 응답을 하려고 하지만 어색하기만 할 뿐 천성을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입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제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게 됩니다. 제가 목사인 줄 알고는 휴대폰 연락이 더 어렵다며 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아내에게 용건이 있는 사람들이 가끔 천덕꾸러기인 저희 집 전화 번호 벨을 울리게 합니다. 아내가 받을 때가 많지만 저도 종종 받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한결 안정감을 느낍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메산골 농촌에 살던 어린 시절엔 전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한 마을에 한 대의 전화로 온 마을이 원거리 소통을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장 집에서 방송이 나왔습니다. 누구누구 댁 서울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으니 속히 와서 받으세요라는 방송은 한 마을을 즐겁게 하는 노래 소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일반 전화가 집집마다 보급되더니 지금은 초등학교 아이에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발달된 문화 속에 살면서 과거를 생각하면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저희 집 전화를 생각하면 가끔 애처로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온갖 화사한 휴대폰이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집 전화는 찾는 사람이 드뭅니다. 가끔 벨이 울려 받으면 상업성 전화나 여론조사 또는 사기성 전화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감정이 헝클어집니다. 이럴 때 전화를 받는 저보다도 전화기가 더 속상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 전화를 사랑해 주기로 했습니다. 전화벨이 울릴 때, 내용에 관계없이 반갑게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휴대폰 없는 아내를 찾는 전화도 이것으로 많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도 저는 정말 반갑고 친절하게 받을 것입니다.

 

조금 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뛰어가서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사모님 안 계세요. 정수기 회산데요. 정수기 필터 교체할 때가 되어서 내일 방문하려구요."

 

저는 가급적 친절하게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려고 애썼습니다. 상대방도 목소리가 점점 밝아졌습니다. 가는 정이 고와야 오는 정도 곱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첨단의 이기(利器)들을 누리고 살면서, 인정과 사랑은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11.05.03 09:50ⓒ 2011 OhmyNews
#휴대폰 #집전화 #스마트폰 #부부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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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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