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방송통신위 상임위원.
방통위 제공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 인물이 민주당이 추천한 이병기 방통위원이었다. 그는 왜 민주당 추천으로 그 자리에 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처음부터 나왔다. 결국 그는 방통위원 자리를 그만두고,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는 방통위의 종합편성·보도 채널 승인 심사위원장의 자리를 맡았고, 또다시 박근혜 의원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이병기 위원이 민주당 추천으로 방통위원이 될 때 당시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 체제였다. 방통위원 추천을 위해 문광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 중심으로 진행되던 도중에, 추천 방식이 갑자기 바뀌게 되었다. 이른바 학계 인사 등이 참여한 새로운 방통위원 추천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 추천위원회는 전혀 뜻밖의 인사들을 민주당 추천의 첫 방통위원으로 뽑았다. 손학규 대표가 지금도 언론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 쪽에서 욕을 얻어먹는 이유다. 언론의 지형 변경과 관련하여 그토록 막중한 권한과 책임이 있는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어떻게 뜻밖의 인물들이 선택되었는지 아직도 나는 잘 이해를 못 하겠다. 그런 인물들이 방통위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가.
무너져 가는 KBS 이사회막강한 권력을 가진 방통위가 이 모양이다 보니, KBS 이사 선임권을 가진 방통위에 무엇을 기대한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랬기에 KBS 이사 중 누군가가 그만두게 되면, 그 후임은 친이명박 정권 쪽 인사가 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2008년 3월에 조아무개 KBS 이사가 총선 출마를 위해 이사직을 그만두었을 때 그 후임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친정권적 인사가 들어왔다.
이제 KBS 이사회 구성은 7대 4가 되었다. 두 명만 친정권 인물이 들어오면 KBS 이사회는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역전이 가능한 구조가 되어 버렸다.
바로 이즈음 <동아일보>가 재미있는 기사를 전했다. 2008년 3월 26일자 '거취 주목받는 KBS 이사 4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KBS 이사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조아무개 이사가 이미 떠난 뒤여서, 남은 3명의 이사 가운데 2명만 그만두면 KBS 이사회는 정권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그런 상황에서 나온 기사였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혔을 뿐 아니라 이들 이사에게 어떤 '의혹'이 뒤따르고 있는지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그만두라는 압박과 다름이 없었다. 일부 이사들에게는 직접 전화를 해서 '사퇴 가능성'까지 물었다.
그렇게 <동아일보>가 구체적 이름을 밝히고, 그들이 보기에 '약점'이라고 여겨지는 '의혹'을 거론까지 하면서 압박을 가하던 그즈음에 어느 KBS 이사가 '전향'의 목소리를 내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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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취 문제를 적극적으로 생각하셔야지요"<동아일보> 기사가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어느 KBS 이사가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는 2002년 대통령 선거 종반전이 진행될 무렵, 노무현 후보 캠프에 언론 특보로 들어간 인물이다. 참여정부 시절, 방송위원회 등 언론 관련 기관에 인사가 있을 때 종종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KBS 이사로 재직하면서 KBS가 참여 정부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라며 내게 이런저런 주문과 궂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는 어느 공기업의 감사직도 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암에 걸렸을 때 작지만 이런저런 편의를 보아준 적도 있었다. 그랬던 인물이었기에 점심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을 때, 나는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위로하려고 그러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그가 불쑥 던지는 말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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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사장. 어떻게 하실 거요?""어떻게 하다니, 무슨 말씀을….""아니, 이렇게 시끄러운데 거취 문제를 이제 적극적으로 생각할 때가 된 게 아닌가요?""거취 문제를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그만둔다는 이야기인데….""그럴 때가 된 거 아니오?"다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냥 웃고 넘겼을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KBS가 참여정부를 너무 비판한다며 이런저런 궂은 말을 내게 많이 했던 인물이 느닷없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내게 '백기'를 들으라는 주문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뜻밖이고, 황당해서 한동안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되물었다.
"나 그만두고 나면 이명박 사람이 들어올 텐데요.""아니, 떠나는 사람이 뭐 그런 뒷일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요?"순식간에 친정권 쪽으로 전복된 KBS 이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