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등록제(政派登錄制)를 생각한다

등록 2011.04.30 17:04수정 2011.04.3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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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대통합, 빅텐트론, 가설정당 등과 관련하여 정파등록제가 거론된다. 용어가 다소 생소한데, 내용인즉 정당이 통합을 하되, 기존 정당의 이념, 정책, 가치, 세력 등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특히, 정당 내에 상존하는 계파, 계보, 그룹 등의 생존, 자율 등 정치적 이해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보장할 새롭고 획기적인 방법은 크게 없어 보인다. 우리 정당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여 실행한 바 있다. 어찌 보면 굳이 제도화 등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다양한 정치행위로 자연스럽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당의 합당에 있어서 정당의 명칭, 지향 노선, 정강 및 정책 등은 상대적으로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문제는 세력 보장이며, 이와 관련한 소위 지분(持分) 협상이다. 지분 협상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합당의 명분을 훼손할 수 있으며 지리한 양태로 전개되어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이면합의가 있을 수 있다. 이면 합의와 관련하여 그 준수 여부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먼저, 어느 정파의 수장(首將)을 중앙당과 시도당의 법적 대표로 하여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을 할 것인가이다. 중앙당의 경우 비교적 최근의 정당사는 단독 대표, 2인 이상의 공동대표를 다 경험한 기록을 보여 준다. 통합 세력 간에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세력이 우세한 정당은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정당에서 정파적 이익을 지켜 줄 '최후의 보루(堡壘)'로 생각하여 요구하는 공동대표제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 신민주연합당과 민주당의 합당,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 등에서 민주당은 공동대표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민주당과 신민당은 공동대표제가 최종적으로 합의되지 않아서 합당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민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은 합당을 하면서 2인 공동대표제를 합의하여 등록한 바 있으나 중도개혁통합신당의 이탈로 오래가지 못하였다.  

 

둘째, 각 정파의 세력 지분을 어떻게 결정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이다. 민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은 정당의 대의기구, 집행기구 등의 구성을 50대 50의 지분으로 양분하자는 합당 정신에 입각하여 구성방안을 당헌에 규정한 바 있다. 아마도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 사항의 실행 방안을 협상하다 보면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사사건건 이렇게 해야만 할 것인가에 대하여 피곤하고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합당을 해서 하나의 세력으로 물리적 결합을 했는데 화학적 융합을 하지 않고 니편, 내편 갈으면서 자기 몫을 끝까지 챙겨야만 하는 것인가. 그리고 자기 몫을 챙기는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은 내 사람 심기라는 일종의 엽관제적 인사로 구성원 간의 자질 시비가 발생하며, 상식적인 조직의 위계질서마저 실종되어 불필요한 마찰과 비효율성을 초래하여 콩가루 정당이라는 조롱을 받게 된다.

 

이 밖에 지분을 합의하고 규정화해도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 실제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포괄적 권한을 위임받아 실제적으로 최고의결기구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는 최고위원회(총재단)의 운영을 '합의제'로 할 것인가, 아니면 '협의제'로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단순히 정당 운영의 민주성과 효율성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다. 상호 반목이 심하여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여 일을 그릇치고 비판을 초래하는 등 큰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과거 민주당이 합의제로 운영한 경험이 있는데 책임감 결여, 뺑뺑이 돌리기 나눠 먹기 인사 등 좋지 않은 기억은 이를 반복하는데 주저하게 한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이해 관계가 얽힌 중요한 사항으로,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통상적인 방식은 '조직강화특별위원회', '공직선거후보자추천심사위원회' 등 공직선거와 관련된 정당 내부 기구의 구성을 각 정파의 세력 지분에 상응하도록 하여 후보자 추천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후보자 추천의 상향식 민주화, 국민 참여 경선, 공정한 추천 등의 취지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보자 추천을 공정하게 하기 위하여 정당 외부 인사로 후보자추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추세에도 맞지 않다. 또한, 설혹 정파 지분에 맞게 후보자 추천을 배분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어느 지역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 정파 간에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어렵게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온전하게 실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정파등록제는 이미 정당의 합당 등에서 거론되고 실천되었던 방식을 다시 검토하여 선택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정파등록제를 꼭 해야만 하는 것인가,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잘 될 수 있을 것인가, 정당의 제도화와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인가 등등의 근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정파등록제는 마음 문을 활짝 연 굳은 믿음, 통쾌함 등이 밑바탕이 된 긍정적, 적극적 통합이 아니라 불신 잔존, 내키지 않음, 불안한 동거,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결별, 자기 몫 챙기기 연연 등의 부정적 소극적 통합이라는 인상을 준다.

 

정파등록제가 주는 당당하지 못한 인상을 어떻게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야권에게 주어진 선거 승리, 정권 교체라는 과제를 멋지고 신나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사전에 면밀한 점검과 대책이 필요하다.

2011.04.30 17:04ⓒ 2011 OhmyNews
#정파등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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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부패방지위원회 및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개혁적 입장에서 새로운 정보 등 취득 및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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