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접으려던 때, 사형수 편지를 받고..."

월간 <숲> 발행인 육상수 선생의 생태강연을 듣고

등록 2011.04.28 14:33수정 2011.04.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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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저녁 생태문화공간 논밭예술학교의 4월 생태강연이 있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월간<숲>의 대표 육상수 선생님을 강연자로 모셨습니다. 저는 백사(百事)를 제쳐두고 그분에게 2시간 귀 기울였습니다.


. 중인 육상수대표
.중인 육상수대표 이안수

저는 요즘 '숲'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이상한 증상을 앓고 있습니다. 심장이 벌렁대는 일이 생겨도 '숲'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위안이 됩니다.

긴 여행에서 사방이 숲뿐인 곳에서 히치하이크에 실패하고 어둠이 내려도 차라리 그곳이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 안도가 됩니다. 원시의 모습을 간직한 숲을 만나면 그곳에 안겨보지 않으면 발길을 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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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는 2003년 7월,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코너브룩(Corner Brook)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뉴펀들랜드섬에서도 연어가 가장 많다는 험버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그 작은 도시에는 세계 최대 크기의 제지 공장이 하루 종일 구름덩어리처럼 거대한 연기를 내뿜고, 나무를 찌는 냄새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무가 찢겨 펄프를 내뱉으며 죽는 그 냄새가 동물의 피비린내처럼 느껴졌습니다. 방문 신청을 한 후 며칠을 기다려 그 공장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거대한 휠에 뾰족하고 촘촘하게 붙은 칼날에 온몸이 찢겨 가루로 변하는 나무의 죽음에 대해서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위한 우리의 처신에 대해 숙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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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육상수 선생님은 제게 매혹이고 가장 큰 위안인 그 '숲'을 매일 끌어안고 그것을 주제로 월간지를 내는 분이니 숲의 비밀을 얼마나 많이 알고 계실까 싶었습니다.


이 생태강연은 강연전에 강연자와 청자가 함께 모여 '유기농 채소와 구수한 재래식 된장을 쓱쓱 비벼 먹는 건강한 저녁식사'를 함께 나누고 시작합니다. 천호균 선생님은 사모님께 청하여 특별히 막걸리 한 대접을 돌렸습니다.

 강연전에 유기농 채소의 비빕밥을 나누는 한밥상의 시간
강연전에 유기농 채소의 비빕밥을 나누는 한밥상의 시간 이안수

육상수 선생님은 원래 생업으로 기업의 홍보물을 제작하는 일을 하셨답니다. 어느날 문득 스스로를 뒤돌아보니 '자신의 것'은 하나도 남은 게 없더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기업의 일을 대신해주었을 뿐이니까요.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심산으로 '숲'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의 양해를 구한 아파트 한 채를 자본금으로…….

"'녹색'은 인류 문명의 근원적 틀을 바꾸는 새로운 문명이자, 자본주의(인류의 최고 실패작)를 흔들어 놓을 패러다임임을 확신합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가 그 이기의 문명에서 이제 겨우 한 발짝 벗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환경단체가 '지구온난화 세미나'에 정치인, 교수, 기자들 불러놓은 곳이 다름 아닌 에어컨이 잘 돌아가는,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고급 호텔입니다. 저는 북극곰이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에 더 매진할까합니다."

육상수 선생님의 이런 신념과 의지가 별다르게 느껴지지 않아야 당연한데 오늘날 여전히 별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육 선생님의 글에서 그 분이 <숲>을 발행해야할 당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07년 3월호 창간된 이 잡지는 '숲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존귀성을 알리고, 인간의 마음에 숲의 외연과 내연을 심어주면서 가꿔나가기 위한 인문교양지'입니다. 일방적으로 숲의 외형이 아닌 삶에 있어 보편적 주제를 진지하면서도 둔탁하지 않게 전하고자하는 노력을 지속해왔습니다. 울창한 그 책의 <숲>에 들면 숲의 품 안에 필연적으로 안길 수밖에 없는 자연과 환경, 교양과 철학 같은 인문이라는 사람의 얘기가 가지를 뻗고 있습니다.

 인문교양지 월간<숲>
인문교양지 월간<숲> 이안수

이제 47호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달콤하고 부드러운 인공의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몸에 좋은 현미밥에 쉽사리 숟가락이 가지 않듯 월간 <숲>도 마음이 가는 만큼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작년에 책을 접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형수로 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7년 동안의 수감 생활 중에 구치소로 들어오는 잡지를 보면서 자신을 위로했는데 우연히 <숲>을 접했고, 그 이후부터는 다른 잡지들을 모두 치워버렸다는……. 저는 다시 용기를 얻고 발행을 계속하기로 했지요."

육 선생님은 4년 동안 '숲'을 만들면서 얻은 당면한 지구의 여러 문제에 대해 말했습니다. 석유의 문제, 기후의 문제, 식량의 문제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의 문제…….

육 선생님의 말씀들은 이런 다급하고 절실한 문제들에 대해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자신의 올바른 주관을 확립하고 그 주관에 따른 올바른 소비를 해야 할지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최초의 자연파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세요? 그것은 창고가 만들어지고부터입니다. 사람들은 창고에 비축하기 시작했고, 그것에서 힘이 생겨났으며,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냥과 채집의 시대에는 창고가 필요 없었고 구태여 파괴를 동반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육 선생님의 말씀은 <식물의 역사와 신화>의 자크 브로스의 얘기와 닿아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세상 전체가 신성한 지역이었으며, 인간의 삶 역시 신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밭에 곡식을 심게 된 후로는 신에게 속하지 않는 지역, 즉 세속적인 지역이 생겨났으며, 이 지역은 씨앗을 뿌리기 위해 미리 벌거숭이가 되어 초토화 되었다."

'역사에서 위기를 구한 것은 학자나 정쟁가들이 아닌 현실의 몸의 직시한대로 움직인 시민들'이라는 육 대표님의 생각대로 자연이야말로 한두 사람이 아닌, 우리가 다 함께 받들어야할 경외로운 대상입니다.

 유한대학은 운동장과 주변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나눔의 숲'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유한대학은 운동장과 주변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나눔의 숲'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월간숲 #육상수 #논밭예술학교 #생태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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